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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모 볼

테크모 볼 (Tecmo Bowl USA) · 1989 · Tec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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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을 고르는 순간의 눈치 싸움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에 화면이 넷으로 갈립니다. 네 가지 작전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입니다. 공격 쪽은 어떤 작전으로 갈지 고르고, 수비 쪽도 상대가 어떤 작전을 쓸지 예상해서 고릅니다. 여기서 수비가 맞히면 그 플레이는 거의 막힙니다. 반대로 빗나가면 크게 뚫립니다.

미식축구를 몰라도 이 구조는 바로 이해됩니다. 가위바위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완전한 운은 아닙니다. 상대가 방금 무엇을 골랐는지, 지금 몇 야드가 필요한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읽기가 이 게임의 재미입니다.

테크모 볼 스포츠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9)

어떤 게임인가

테크모 볼(Tecmo Bowl)은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 게임입니다. 팀을 하나 골라 상대와 경기를 치르는데, 실제 미식축구의 복잡한 규칙을 상당히 덜어 내고 핵심만 남겼습니다.

한 플레이는 이렇게 흘러갑니다. 공격 측이 작전을 고르면 선수들이 배치되고, 공을 잡은 뒤 직접 조종해 앞으로 달립니다. 패스 작전이면 던질 대상을 골라 공을 띄우고, 받은 선수를 조종해 나아갑니다. 수비 측은 한 선수를 직접 조종해 상대를 붙잡습니다.

정해진 야드를 전진하면 공격 기회가 이어지고, 끝까지 가면 득점입니다. 못 하면 공격권이 넘어갑니다. 이 주고받기가 정해진 시간 동안 반복됩니다.

실제 미식축구에 있는 세세한 규칙은 대부분 빠져 있습니다. 반칙 판정도 거의 없고, 선수 교체나 전술 세부 설정 같은 것도 없습니다. 그 덕분에 종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한 경기를 치르는 동안 규칙을 자연스럽게 익힙니다. 덜어 낸 선택이 이 게임을 널리 퍼지게 만들었습니다.

테크모 볼 스포츠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89)

조작과 요령

공을 잡은 뒤의 조작이 이 게임에서 가장 손이 가는 부분입니다. 앞에서 수비수가 달려오면 방향을 틀어 피하고, 붙잡히기 직전에 버튼을 눌러 뿌리칠 수 있습니다. 이 뿌리치기가 몇 번이나 통하느냐가 선수마다 다릅니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면 금방 잡힙니다. 옆으로 크게 돌아 빈 공간을 찾은 뒤 앞으로 꺾는 움직임이 훨씬 많이 전진합니다. 다만 옆으로 도는 동안 뒤에서 따라붙으므로, 언제 꺾을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패스는 확실히 크게 벌 수 있는 수단이지만 위험합니다. 던지는 순간 수비수가 근처에 있으면 가로채이고, 그러면 공격권이 즉시 넘어갑니다. 받을 선수 주변이 비어 있는지 확인하고 던져야 합니다.

테크모 볼 스포츠 게임 화면 3 - 패미컴 (1989)

팀과 선수를 고르는 것

팀마다 성격이 다릅니다. 달리기가 강한 팀이 있고 패스가 강한 팀이 있습니다. 달리기가 강한 팀은 안정적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패스가 강한 팀은 한 번에 크게 벌 수 있는 대신 실패하면 손해가 큽니다.

특정 선수의 능력이 유난히 높은 팀도 있습니다. 그런 선수에게 공을 몰아주면 웬만한 수비는 뚫고 나갑니다. 상대도 그걸 알기 때문에 그 선수를 집중해서 막으려 하고, 그 사이에 다른 선수로 빈틈을 찌르는 수 싸움이 벌어집니다.

수비할 때는 상대 팀의 성격을 보고 작전을 고릅니다. 달리기 위주의 팀이면 앞을 막는 작전을, 패스 위주면 뒤를 두껍게 하는 작전을 고르는 식입니다. 매번 맞힐 수는 없지만, 경향을 읽으면 확률이 올라갑니다.

둘이 붙어야 완성되는 게임

혼자 컴퓨터와 해도 재미있지만, 이 게임의 진가는 사람과 붙을 때 나옵니다. 작전 선택 화면에서 서로 눈치를 보고, 상대가 방금 뭘 골랐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역이용하고, 뻔한 상황에서 일부러 반대로 가는 심리전이 벌어집니다.

미식축구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도 이 게임이 통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종목을 몰라도 수 싸움 구조는 누구나 이해하고, 공을 잡고 달리는 조작은 몇 분이면 익힙니다.

국내에서는 미식축구 자체가 낯선 종목이라 처음에는 뭘 하는 게임인지 몰랐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몇 판 해 보면 규칙이 잡히고, 그때부터는 둘이 붙어 계속하게 됩니다. 복사팩 스포츠 칸에서 축구나 야구 옆에 놓여 있다가 우연히 걸린 뒤로 오래 붙잡게 되는 종류의 게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