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블 사커 (게임기어)
센서블 사커 (Sensible Soccer Europe)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선수가 왜 이렇게 작지
이 게임을 처음 켜면 누구나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선수가 너무 작습니다. 얼굴은커녕 몸통도 제대로 안 보이고, 화면 위에서 점 몇 개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같은 시기에 나온 다른 축구 게임들이 선수를 크고 또렷하게 그려 넣으려 애쓰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이 작음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라는 걸 아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선수를 작게 그렸기 때문에 화면 안에 경기장이 훨씬 넓게 들어오고, 그 덕에 내 선수 주변만이 아니라 저 멀리 비어 있는 공간까지 한눈에 보입니다. 축구에서 중요한 것은 발밑이 아니라 어디가 비어 있느냐인데, 이 게임은 그 사실을 그림 크기로 증명해 버렸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센서블 사커(Sensible Soccer)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축구 게임입니다. 조작은 극단적으로 단순합니다. 방향을 정하는 레버와 버튼 하나. 버튼을 누르면 공을 차고, 얼마나 오래 누르느냐로 세기가 정해집니다.
버튼 하나로 패스와 슛과 클리어를 모두 처리한다는 것은 곧,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게임이 알아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골대 쪽을 보고 있으면 슛이 되고, 동료 쪽을 보고 있으면 패스가 됩니다. 요즘 축구 게임이 버튼 여섯 개에 조합까지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다른 장르처럼 느껴집니다.
버튼을 누른 뒤가 진짜
이 게임의 가장 유명한 특징은 공을 찬 뒤에도 궤적을 휘게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버튼에서 손을 떼고 나서 레버를 옆으로 밀면 공이 그쪽으로 감깁니다. 이걸 익히면 수비벽을 넘겨 골대 구석으로 감아 넣는 슛이 가능해집니다.
처음에는 이 기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로 직선 슛만 차게 됩니다. 그러다 우연히 공이 휘는 걸 보고 나면 게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슛뿐 아니라 긴 패스도 수비수 뒤로 감아 넘길 수 있고, 코너킥도 곧장 골대 안으로 감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의 조작이 이 게임을 그 시절 다른 축구 게임과 갈라놓았습니다. 조작은 버튼 하나로 가장 단순한데, 그 버튼 하나로 낼 수 있는 결과의 폭은 가장 넓었던 것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첫 번째 벽은 속도입니다. 이 게임은 공과 선수가 상당히 빠르게 움직입니다. 생각하고 조작하면 이미 늦고,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공을 잡자마자 실수로 헌납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요령은 공을 오래 끌지 않는 것입니다. 드리블로 돌파하려 들면 거의 뺏깁니다. 잡자마자 앞쪽 빈 공간으로 차 놓고 달려가는 식이 훨씬 잘 통합니다. 이 게임에서 드리블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 주된 전진 수단이 아닙니다.
두 번째 벽은 수비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이라 내가 조종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립니다. 공을 뺏으러 달려간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선수를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수비할 때는 욕심내서 달려들기보다 상대 진행 방향 앞을 막아서는 편이 안전합니다.
휴대용으로 옮겨진 판
이 게임은 원래 가정용 컴퓨터에서 이름을 얻었고, 그 뒤 여러 기기로 퍼졌습니다. 휴대용 기기로 옮겨진 이 판은 화면이 훨씬 좁아진 만큼 원작의 강점이던 넓은 시야가 줄어듭니다. 선수가 작은 것은 그대로인데 보이는 범위는 좁으니, 원작을 아는 사람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휴대용에 맞게 한 판이 짧고 부담이 없습니다. 축구 게임을 진지하게 파고들기보다 몇 분 짬을 내서 한 경기 치르는 쪽에 어울립니다. 그 시절 휴대용 이식판의 대부분이 그랬듯, 원작을 대체하는 물건이 아니라 원작을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습니다.
유럽식 축구 게임의 계보
1990년대 축구 게임은 크게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선수를 크게 그리고 실제 중계 화면처럼 보이게 만드는 쪽, 다른 하나는 경기장을 통째로 보여 주고 전술적인 판단에 무게를 싣는 쪽입니다. 이 게임은 후자의 대표 격입니다.
유럽, 특히 영국의 가정용 컴퓨터 문화에서 이런 방식의 축구 게임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친구끼리 한 판씩 붙는 문화가 있었고, 규칙이 단순해서 누구나 바로 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이 계열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내 축구 게임의 기억은 대체로 오락실 기판이나 콘솔 쪽에 몰려 있고, 유럽 컴퓨터 게임 문화는 거의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지금 해 보면 오히려 낯설게 신선합니다. 축구 게임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었구나 하는 쪽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