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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천지창조 (Terranigma Europe) · 1995 · E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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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을 때마다 대륙이 솟아오릅니다

이 게임의 세계는 처음에 텅 비어 있습니다. 지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주인공은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년입니다. 그가 탑을 오르고 관문을 열 때마다 지상에 대륙이 하나씩 떠오르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나타나며 사람이 살기 시작합니다.

세계를 구하는 게임은 많지만, 세계를 처음부터 만들어 가는 게임은 흔치 않습니다. 텅 빈 지도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이 구조가, 천지창조라는 제목을 그대로 게임 시스템으로 옮겨 놓은 셈입니다.

천지창조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5)

어떤 게임인가

천지창조(Terranigma)는 에닉스가 슈퍼패미컴으로 내놓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지하 세계 크리스털의 마을에 살던 소년 아크가 금지된 상자를 열면서 마을이 얼어붙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세계를 부활시키는 여정에 나섭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창을 휘두르며 실시간으로 싸웁니다. 공격 방식이 꽤 다양해서, 그냥 찌르기 외에 달려들어 찌르기, 뛰어올라 내리찍기, 회전 공격 등을 상황에 맞춰 씁니다. 이 손맛이 같은 계열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좋다는 평을 받습니다.

천지창조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슈퍼 패미컴 (1995)

되살아나는 세계

1장에서는 지하 세계의 탑들을 오르며 지상의 대륙을 되살립니다. 2장에서는 지상으로 나가 식물과 동물과 사람을 차례로 부활시킵니다. 그러고 나면 실제 지구를 본뜬 지도가 드러나고, 3장부터는 그 위에서 사람들의 문명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마을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주인공이 특정 인물을 만나거나 물건을 전해 주면 도시가 발전하고, 새 건물이 생기며, 상점의 물건이 바뀝니다. 어떤 도시는 조건에 따라 크게 번영하기도 합니다.

문명이 자라면서 벌어지는 일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점도 이 게임이 다루는 주제입니다. 발전과 그 대가를 함께 보여 주는 후반부의 전개는 상당히 씁쓸합니다.

성장과 장비

적을 잡으면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오르는 정통적인 방식이고, 여기에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능력을 보조하는 반지 같은 장신구가 붙습니다. 상점마다 파는 물건이 다르고 도시가 발전하면 더 좋은 것이 들어오므로, 마을을 키우는 것이 곧 전력 강화로 이어집니다.

마법도 있습니다. 다만 직접 외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 아이템을 통해 사용하는 형태라, 준비를 갖추고 쓰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던전에는 발판을 옮기거나 순서를 맞추는 소소한 장치들이 섞여 있어 단순 전투만 반복되지 않습니다.

퀸텟 삼부작의 마지막

이 작품은 소울 블레이저, 가이아 환상기와 함께 개발사 퀸텟의 세 작품 중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세계를 되살린다는 주제를 공유하면서,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습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발매되었으나 북미에는 정식으로 나오지 않았고, 국내에도 정식 발매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슈퍼패미컴 후기 명작을 이야기할 때 늘 이름이 오르며, 특히 결말의 여운 때문에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