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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 오브 더 위저드

레거시 오브 더 위저드 (Legacy of the Wizard USA) · 1989 · Broderb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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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시작하면 던전이 아니라 어느 집 거실이 나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애완동물까지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여 있고, 플레이어는 그중 누구를 내보낼지 고릅니다. 밖으로 나가면 집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지하 미궁이 있습니다. 한 명이 다 클리어하는 게임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서 여러 명을 번갈아 내보내며 조금씩 길을 열어야 하는 구조입니다.

레거시 오브 더 위저드(Legacy of the Wizard)는 니혼 팔콤이 만든 액션 RPG입니다. 목표는 미궁 곳곳에 흩어진 네 개의 왕관을 모아 봉인된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고, 그 검으로 드래곤을 처치하는 것입니다. 옆에서 보는 화면에서 점프하고 마법을 쏘며 적을 상대하는 액션이지만, 진행의 뼈대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하고 조합하는 탐색에 있습니다.

레거시 오브 더 위저드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89)

가족마다 다른 능력

아버지는 균형이 잡혀 있고 몸이 튼튼합니다. 어머니는 마법 능력이 뛰어나고 특정 지역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점프력이 좋아 다른 사람이 못 오르는 곳에 닿고, 딸은 이동이 가볍고 특유의 능력으로 좁은 구간을 지납니다. 애완동물은 적에게 죽지 않는 특성이 있어 위험한 구간을 정찰하는 데 씁니다.

그래서 한 캐릭터로 벽에 막혔다고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른 가족을 내보내면 그 자리를 지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관도 각각 특정 가족만 가져올 수 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결국 네 명 전부를 골고루 써야 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체 구조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게임이 굉장히 불친절하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이해하고 나면 지도의 모든 구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까 못 지나간 그 통로가 누구의 몫인지 떠올리는 순간이 이 게임의 재미입니다.

레거시 오브 더 위저드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89)

지도를 그리며 하는 게임

미궁은 상당히 넓고, 게임 안에는 지도가 없습니다. 당시 이 게임을 제대로 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종이에 직접 지도를 그렸습니다. 어디에 아이템이 있었고 어느 문이 잠겨 있었는지, 어느 통로가 어느 방으로 이어지는지를 적어 두지 않으면 같은 자리를 몇 번씩 돌게 됩니다.

열쇠와 소모품 관리도 중요합니다.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한데 무한정 주어지지 않으므로, 지금 이 문을 여는 게 맞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잘못 써 버리면 진행이 막혀 처음부터 다시 돈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옵니다. 이런 자원 압박이 난이도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 회복할 수 있고, 저장도 가능합니다. 무리해서 더 들어가는 것보다 안전선에서 돌아 나오는 판단이 훨씬 중요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욕심을 부리다 깊은 곳에서 쓰러져 진척을 잃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 안에서

이 게임의 일본판 원제는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팔콤의 드래곤 슬레이어 시리즈는 작품마다 장르와 형태를 크게 바꾸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액션과 탐색을 결합한 방향을 택했습니다. 나중에 널리 퍼진, 능력을 얻어야 새 지역이 열리는 탐색형 액션 게임의 이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서구권에는 브로더번드가 들여왔고, 이 시리즈 중 처음으로 북미에 정식 소개된 작품이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 서구 잡지들의 평가는 갈렸습니다. 안내가 거의 없는 방대한 미궁과 자원 관리 압박이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을 위한 요령

먼저 애완동물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을 권합니다. 적에게 당하지 않으니 부담 없이 지형을 익힐 수 있고, 그 사이에 얻은 정보가 나중에 다른 가족을 내보낼 때 그대로 쓰입니다.

다음으로는 집 근처 구간부터 확실히 정리합니다. 멀리 있는 왕관을 노리기 전에 가까운 곳의 아이템과 통로를 확보해 두면 이동이 훨씬 편해집니다. 그리고 열쇠는 아깝다 싶을 만큼 아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국에서

국내에서는 복사팩으로 유통되며 접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영어 텍스트와 지도 없는 구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포기한 경우도 많았지만, 반대로 노트에 지도를 그려 가며 끝까지 파고든 사람들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화려한 액션보다는 파고드는 재미로 승부하는 쪽이라, 지금 해도 그 성격은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