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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퍼스

롬퍼스 (Rompers Japan New Version REV B) · 1989 · Namco

방향버튼ASZX보조QERT동전Shift시작Enter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미로 게임에서 벽은 보통 넘을 수 없는 경계입니다. 길을 막고, 시야를 가리고, 도망칠 방향을 정해 주는 배경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전제를 뒤집습니다. 여기서 벽은 밀면 넘어가는 판때기이고, 넘어가는 자리에 적이 서 있으면 그대로 깔려 죽습니다. 도미노처럼 세워진 벽 사이를 뛰어다니며 적을 유인해 깔아뭉개는 것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롬퍼스(Rompers)는 밀짚모자를 쓴 주인공을 조종해 미로처럼 짜인 정원을 돌며 흩어진 열쇠를 전부 모으는 아케이드 액션 게임입니다. 목표는 붙잡혀 간 여자친구를 되찾는 것이고, 한 판은 화면 하나로 끝납니다. 조작은 8방향 이동과 미는 버튼 하나뿐인데, 그 하나의 버튼이 공격이자 이동 수단이자 함정 해제 도구를 겸합니다.

롬퍼스 액션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9)

미는 버튼 하나로 다 합니다

주인공은 총도 칼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라보는 방향으로 미는 것뿐입니다. 눈앞에 벽이 서 있으면 그 벽이 밀려 넘어가고, 넘어가는 벽에 깔린 적은 납작해집니다. 반대로 적이 바로 앞에 있는데 벽이 없으면 밀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적을 잡는 게임이라기보다 적을 벽 앞으로 데려오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초보자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벽이 넘어가는 방향과 범위를 눈에 익히는 일입니다. 벽은 밀린 방향으로 쓰러지고, 쓰러진 길이만큼 넓게 깔아뭉갭니다. 즉 적 한 마리를 잡자고 아무 벽이나 미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그 줄 위에 겹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밀어 넘기는 것이 요령입니다. 적이 나를 향해 몰려오는 성질을 이용해, 벽 뒤에 서서 기다리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미는 식입니다.

주의할 점은 밀린 벽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넘어간 벽은 그 자리에 누워 지형을 바꿔 놓기 때문에, 생각 없이 벽을 다 눕혀 버리면 나중에 쓸 무기가 없어지고 미로의 도망길도 함께 사라집니다. 벽은 소모품이라고 생각하고 아껴 써야 합니다.

롬퍼스 액션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9)

깔아뭉갠 적은 알을 남깁니다

이 게임이 단순한 학살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벽에 깔린 적은 그 자리에서 알이 되고, 몇 초가 지나면 알에서 다시 부화합니다. 그러니까 잡았다고 안심하고 열쇠를 주우러 가는 사이에, 등 뒤에서 방금 잡은 적이 되살아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전에서는 적을 잡는 것 자체보다 잡아 둔 몇 초 동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근처의 적을 한꺼번에 눕혀 놓고 그 사이에 멀리 있는 열쇠를 주우러 다녀오는 식으로, 벽 밀기는 공격이라기보다 시간 벌기에 가깝게 쓰입니다. 반대로 알을 그대로 두면 안 되는 상황도 있어서, 부화하기 전에 알 위로 다시 벽을 눕혀 정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시간이 다 되면 상황이 뒤집힙니다

각 판에는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다 되는 순간이 이 게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시간이 끝나면 벽으로도 잡을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고, 그때부터 다른 적들이 전부 두 배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여유롭게 열쇠를 세던 화면이 순식간에 도망 게임으로 바뀝니다.

이 장치 덕분에 이 게임은 느긋하게 최적해를 찾는 퍼즐이 되지 않습니다. 판을 보고 열쇠 위치를 파악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처음 몇 초 안에 어느 열쇠부터 주울지 동선을 정하고 곧장 움직여야 합니다. 시간이 이미 많이 흘렀다면 완벽하게 정리하려 들지 말고 남은 열쇠 쪽으로 최단 경로를 잡는 편이 낫습니다.

한 가지 더 조심할 것은, 시간에 쫓겨 무작정 뛰다가 좁은 통로에서 적에게 앞뒤로 막히는 상황입니다. 이 게임에는 적을 밀치고 지나가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막다른 길에 몰리면 그대로 끝입니다. 열쇠를 주우러 들어갈 때는 나올 길이 하나 더 있는지를 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남코 미로 액션의 계보 위에서

남코는 미로를 돌며 무언가를 모으는 게임의 원형을 만든 회사입니다. 팩맨 이후로도 미로와 추격을 변주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았는데, 이 게임은 거기에 지형을 직접 바꾼다는 요소를 얹었습니다. 정해진 미로를 외워서 도는 게임이 아니라, 내가 미로를 무너뜨려 가며 길과 무기를 동시에 만들어 내는 게임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같은 시기 미로 액션들과 견주면, 이 게임은 적을 피하는 쪽보다 적을 끌어들이는 쪽에 재미가 실려 있습니다. 도망만 다녀서는 벽을 효율적으로 쓸 수 없고, 적이 뭉치기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처리하는 판단이 점수와 생존 양쪽을 좌우합니다. 이런 유인과 함정의 구도는 이후 여러 액션 퍼즐이 반복해서 써먹은 공식이기도 합니다.

한 판이 짧아 부담이 없습니다

판 하나가 화면 하나로 끝나고 규칙이 단순해서, 처음 잡아도 몇 판만 돌리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옵니다. 대신 판이 넘어갈수록 정원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적의 수와 종류가 늘어나 손이 바빠집니다.

밝고 아기자기한 화면 때문에 쉬운 게임처럼 보이지만, 시간에 쫓기며 동선을 짜야 하는 압박은 만만치 않습니다. 벽 하나로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눕혔을 때의 손맛이 이 게임을 계속 붙잡게 만드는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