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비
지 비 (Gee Bee) · 1978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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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맨을 만들기 전, 남코의 첫 게임
팩맨을 만든 사람이 그전에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게임이 그 답입니다. 남코가 직접 개발해 내놓은 첫 비디오 게임이고, 만든 사람은 나중에 팩맨을 설계하게 되는 이와타니 도루입니다. 원래 그는 핀볼 기계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회사에서 받아 주지 않았고, 대신 핀볼의 감각을 화면 안에 옮겨 놓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것이 벽돌깨기와 핀볼을 한 화면에 섞어 놓은 이 게임입니다.
1978년입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세상을 뒤집어 놓던 바로 그해에, 남코는 슈팅이 아니라 공과 패들로 승부를 걸었습니다.
무슨 게임인가
지 비(Gee Bee)는 화면 아래의 패들로 공을 튕겨 올려 위쪽 구조물을 부수는 게임입니다. 기본 뼈대는 벽돌깨기와 같습니다. 공이 아래로 빠지면 하나를 잃고, 정해진 수를 다 잃으면 끝납니다. 조작할 것은 패들의 좌우 움직임뿐이라 처음 잡는 사람도 30초면 규칙을 알게 됩니다.
다른 점은 화면 위쪽입니다. 단순한 벽돌 대열만 있는 게 아니라 핀볼 대에서 볼 법한 장치들이 박혀 있습니다. 공이 튕겨 다니는 범퍼가 있고, 맞히면 점수가 크게 오르는 표적이 있고, 특정 구조를 다 지우면 배수가 붙는 식의 장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을 위로 올려 보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한 번 올라간 공이 위에서 오래 튀며 점수를 벌어 주는 시간이 이 게임의 가장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점수를 버는 방식
이 시절 게임에는 끝이 없습니다. 클리어 화면도, 엔딩도 없습니다. 목적은 오직 점수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아니라, 같은 시간 동안 얼마나 효율적으로 점수를 뽑아내느냐에서 갈립니다.
핵심은 공을 화면 위쪽 장치 사이에 가둬 놓는 것입니다. 공이 범퍼 사이에서 계속 튀는 동안에는 패들을 놀리지 않아도 점수가 쌓입니다. 그러려면 공을 올릴 때의 각도가 중요합니다. 패들 가운데로 받으면 공이 수직에 가깝게 올라가 금방 내려오고, 패들 끝으로 받으면 비스듬히 올라가 위쪽에서 오래 머뭅니다. 이 감각을 익히는 것이 이 게임을 잘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공을 눈으로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공을 따라 패들을 움직이면 항상 한 박자 늦습니다. 공이 어디로 떨어질지 미리 짐작해서 그 자리에 먼저 가 있어야 합니다. 벽돌깨기 계열 게임의 요령은 예나 지금이나 이 하나로 요약됩니다.
흑백 화면에 색깔을 입히던 시절
이 시기 기판은 성능이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빈약했습니다. 화면은 사실상 흑백이고, 색은 화면 유리 앞에 색깔 있는 셀로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냈습니다. 그래서 특정 구역이 항상 같은 색으로 보입니다. 게임 안에서 색을 자유롭게 바꾸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붙여 놓은 색을 통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제약 아래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면 구성이 매우 단순합니다. 선과 점, 네모난 덩어리가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공이 튀는 궤적과 점수가 올라가는 소리만으로 사람을 붙잡아 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려한 것을 다 걷어냈을 때 게임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예로 자주 인용됩니다.
이 게임 뒤로 같은 만든 이가 후속작 성격의 작품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기본 뼈대는 유지하면서 화면과 장치를 바꾼 것들인데, 그 흐름의 끝에서 팩맨이 나옵니다. 미로를 돌며 점을 먹는다는 발상 자체는 다르지만, 단순한 규칙 하나로 사람을 계속 앉혀 두는 설계 감각은 이때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 해 보면 어떤가
솔직히 말하면 요즘 게임에 익숙한 사람에게 처음 몇 분은 심심합니다. 화면은 단조롭고, 소리는 몇 가지 전자음뿐이고, 목표라고 할 만한 것이 점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십 분쯤 잡고 있으면 이상하게 한 판 더 하게 됩니다. 방금 각도를 잘못 줘서 공이 그냥 내려왔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지점이 분명히 보이는 게임은 다시 하게 됩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1978년작을 실시간으로 만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시기 국내에 들어온 기계는 대개 몇 해 늦게, 그것도 복제 기판 형태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오락실의 추억보다는 게임 역사의 첫 장으로 기억되는 쪽입니다. 남코라는 이름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팩맨이 어느 자리에서 나왔는지를 눈으로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 판이 짧으니 부담도 없습니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서 공 몇 번 튕겨 보는 것만으로도, 40년 넘게 앞선 시절의 오락실 공기가 어렴풋이 짐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