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기어스
제노기어스 (Xenogears Disc 1) · 1998 ·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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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시작
게임을 켜면 주인공 펠이 살던 마을이 전투에 휘말려 불타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그 소동 속에서 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 로봇을 조종하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을이 없어져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본인도 모른다는 설정이 이야기 내내 따라붙고, 그 공백을 채워 가는 과정이 곧 이 게임입니다.
제노기어스(Xenogears)는 스퀘어가 만든 플레이스테이션용 RPG입니다. 기어라 불리는 거대 로봇을 타고 싸우는 전투와, 종교와 인간의 기원까지 파고드는 무거운 이야기가 특징입니다. 분량이 워낙 방대해 디스크 두 장으로 나뉘어 나왔고, 지금까지도 이야기의 밀도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입니다.
버튼 조합으로 만드는 콤보
전투는 턴제인데, 자기 차례가 오면 약·중·강에 해당하는 버튼을 조합해 연속기를 넣습니다. 각 공격에 소모하는 포인트가 정해져 있어, 남은 만큼 계속 이어 붙일 수 있습니다. 특정 순서로 입력하면 데스 블로라는 필살기가 나가는데, 이 조합은 많이 써 볼수록 새로 열립니다.
덕분에 턴제인데도 손이 계속 바쁩니다. 어떤 순서로 눌러야 최대 피해가 나오는지 계산하게 되고, 인물마다 열리는 조합이 달라 파티를 바꿀 때마다 다시 익혀야 합니다. RPG 전투에 지루함을 느끼던 사람에게 특히 잘 맞는 방식입니다.
사람으로 싸울까, 기어로 싸울까
이 게임에는 전투가 두 종류 있습니다. 맨몸으로 싸울 때와 기어를 타고 싸울 때인데, 규칙이 서로 다릅니다. 기어 전투에서는 연료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화력을 아끼며 언제 강한 기술을 쓸지 관리해야 합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아무것도 못 하고 얻어맞기만 합니다.
반대로 좁은 실내나 특정 상황에서는 기어를 못 쓰고 맨몸으로 붙어야 합니다. 같은 파티라도 어느 쪽으로 싸우느냐에 따라 강약이 완전히 바뀌므로, 두 방향 모두 육성해 둬야 후반이 편합니다. 기어는 부품을 갈아 끼워 성능을 올릴 수 있어, 정비하는 재미도 따로 있습니다.
종교와 기억, 그리고 반복
이야기는 RPG치고 상당히 어렵고 무겁습니다. 종교 조직과 국가 사이의 정치, 사람을 자원처럼 다루는 체계, 전생과 기억의 반복 같은 소재가 얽혀 있습니다.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가 길고, 설정을 곧바로 설명해 주지 않아 처음에는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후반에 하나로 맞춰지는 순간이 확실히 오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충격 때문에 이 게임을 잊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만 두 번째 디스크는 제작 사정으로 연출이 크게 줄어, 인물이 앉아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진행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화면과 음악
배경은 3D로 만들어져 회전이 가능하고, 그 위에 2D로 그린 인물이 올라가 있습니다. 시점을 돌려 가며 숨은 길을 찾는 구성이 곳곳에 있어, 마을과 던전을 탐색하는 맛이 살아 있습니다. 다만 점프를 요구하는 구간에서 시점 때문에 애를 먹는 일도 있습니다.
음악은 이 게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민속 악기 색채가 강한 곡들이 세계의 분위기를 만들고, 엔딩곡은 지금도 자주 회자됩니다. 국내 정식 발매는 없었지만 이름만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며, RPG를 깊이 파는 사람들 사이에서 늘 우선순위에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