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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이타치의 밤

카마이타치의 밤 (Kamaitachi no Yoru Japan) · 1994 · Chun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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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전부 검은 그림자다

이 게임을 처음 켜면 눈 덮인 산장의 사진 같은 배경이 나오고, 그 위에 사람 모양의 실루엣이 서 있습니다. 얼굴도 옷도 없습니다. 그냥 검은 그림자입니다. 처음에는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몇 장면만 지나면 이게 의도된 연출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얼굴이 없으니 표정을 읽을 수 없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무언가를 숨기는지 그림에서 단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글로 쓰인 말과 행동만 남습니다. 추리물에서 이보다 잔인한 설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그 검은 그림자들이 하나같이 수상해 보이기 시작합니다.

카마이타치의 밤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슈퍼 패미컴 (1994)

어떤 게임인가

카마이타치의 밤(Kamaitachi no Yoru)은 춘소프트가 만든 사운드 노벨입니다. 화면에 글이 흐르고, 배경 사진과 음악과 효과음이 그 위에 얹히며, 이야기가 갈림길에 이를 때마다 선택지가 나옵니다. 게임이라기보다 읽는 것에 가깝지만,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대는 눈에 갇힌 산장입니다. 주인공과 연인이 겨울 휴가로 찾아왔는데, 폭설로 길이 끊긴 상태에서 사람이 죽습니다. 밖에서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으니, 범인은 이 안에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카마이타치의 밤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슈퍼 패미컴 (1994)

소리가 만드는 공포

이 작품이 사운드 노벨이라 불리는 이유는 소리를 이야기의 일부로 쓰기 때문입니다. 눈보라 소리,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가 글과 맞물려 나옵니다. 그림으로 보여 주지 않는 것을 소리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특히 조용하다가 갑자기 소리가 끊기거나 튀는 순간의 효과가 큽니다. 화면에는 별것 없는데 등이 서늘해집니다. 밤에 불을 끄고 하면 체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글도 그냥 흐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글자가 크게 나오거나 화면이 흔들리는 식으로 연출이 붙어서, 읽는 속도 자체가 이야기의 긴장을 만듭니다.

선택이 이야기를 가른다

갈림길에서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달라집니다. 누구를 의심할지, 어디를 조사할지, 무슨 말을 할지가 그때그때 갈립니다. 잘못 고르면 주인공이 죽거나, 진실에 닿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납니다.

중요한 건 한 번 끝냈다고 다 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작품은 여러 결말을 거치면서 전체 그림이 완성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 회차에서 알게 된 정보가 다음 회차의 판단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여러 번 돌면서 무엇이 진짜였는지 알아 가게 됩니다.

게다가 본편을 클리어하고 나면 전혀 다른 성격의 이야기들이 열립니다. 같은 산장 같은 인물들로 시작하는데 장르가 통째로 바뀌는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이 파격이 이 작품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

일본어로 된 작품이라 읽는 부담이 있습니다. 다만 화면에 글이 천천히 흐르고 어려운 표현이 많지 않아, 기본적인 독해가 되면 따라갈 만합니다.

첫 회차에서는 진실을 다 밝히려 애쓰기보다 마음 가는 대로 골라 보는 편이 좋습니다. 어차피 한 번에 다 나오도록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고, 실패한 결말도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저장은 자주 해 두는 게 좋습니다. 갈림길 직전에 저장해 두면 다른 선택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장르를 만든 작품

사운드 노벨이라는 형식은 춘소프트가 앞서 낸 오토기리소에서 시작했고, 이 작품이 그 형식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후 일본에서 쏟아진 수많은 텍스트 어드벤처와 비주얼 노벨이 이 계보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림도 액션도 거의 없는 게임이 왜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지는 한 번 해 보면 알게 됩니다. 눈에 갇힌 하룻밤이라는 상황 하나로 사람의 상상을 최대한 밀어붙인 작품이고, 게임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을 넓힌 사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