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오락실)
VS. 배틀 시티 (Vs Battle City) · 1985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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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방구 앞에서 제일 많이 보던 그 탱크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를 보낸 사람 중에 이 화면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드뭅니다. 벽돌 벽이 깔린 네모난 전장, 아래쪽 한가운데 놓인 독수리 모양 본부, 위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적 탱크. 패미컴과 그 복제기를 통해 워낙 널리 퍼진 덕에 이름은 몰라도 화면은 아는 게임이 되었고, 대개는 그냥 탱크 게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버전은 그 게임의 오락실용입니다. 닌텐도의 VS. 시스템이라는, 가정용 기판을 오락실 캐비닛에 맞게 다듬은 장치 위에서 돌아갑니다. 집에서 하던 것과 뿌리가 같으니 화면과 규칙이 거의 그대로인데, 동전을 넣고 하는 물건답게 잔기와 난이도 쪽이 조금 더 빡빡하게 잡혀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배틀 시티(Battle City)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탱크 슈팅입니다. 한 스테이지는 벽돌벽, 부술 수 없는 강철벽, 물, 숲, 미끄러운 빙판 같은 지형으로 채워진 정사각형 전장 하나입니다. 플레이어는 아래쪽에서 시작하고, 적 탱크는 위쪽 세 지점에서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판에 배정된 적을 전부 부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다만 적을 다 잡는 것만이 조건은 아닙니다. 본부가 부서지면 그 자리에서 게임이 끝납니다. 잔기가 남아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공격 게임이면서 동시에 방어 게임입니다. 앞으로 나가서 적을 잡아야 판이 끝나는데, 너무 나가면 뒤가 뚫립니다. 이 두 가지를 저울질하는 것이 배틀 시티의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본부를 지키는 요령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지는 방식이 본부 피격입니다. 위쪽에서 적을 열심히 잡고 있는데 옆으로 돌아간 한 대가 아래로 내려와 본부를 때리는 것입니다. 이걸 막는 기본기가 본부 둘레의 벽 관리입니다. 본부를 감싼 벽돌은 총에 맞으면 깨지므로, 내가 쏜 유탄에 내 벽이 깨지지 않도록 본부 근처에서는 함부로 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삽 모양 아이템을 먹으면 본부 둘레가 잠시 강철벽으로 바뀝니다. 적이 뚫지 못하는 벽이라 그동안은 마음 놓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내지 말고, 벽이 튼튼한 동안 위쪽 적을 몰아서 정리해 두는 것이 정석입니다. 반대로 벽이 이미 뚫려 있고 적이 아래로 내려오는 중이라면, 다른 적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한 대만 막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템과 지형 활용
특정 색으로 깜빡이는 적 탱크를 부수면 아이템이 떨어집니다. 별을 먹으면 자기 탱크가 단계별로 강해져 총알이 빨라지고, 더 모으면 한 번에 두 발을 쏘거나 강철벽까지 부술 수 있게 됩니다. 폭탄은 화면의 적을 한 번에 정리하고, 시계는 적을 잠시 멈춥니다. 헬멧은 잠깐 무적을 주고, 탱크 모양은 잔기를 늘려 줍니다.
지형도 그냥 배경이 아닙니다. 숲은 탱크를 가려 주므로 매복하기 좋지만 시야도 함께 막혀서 적이 코앞에 올 때까지 모릅니다. 물은 총알은 지나가지만 탱크는 못 지나가므로 안전선으로 쓸 수 있습니다. 빙판에서는 방향을 바꿔도 미끄러져서 본부 앞 빙판은 특히 위험합니다. 지형을 읽고 길목을 잡는 것이 무작정 쫓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좋습니다.
둘이 할 때 달라지는 것
2인 동시 플레이가 이 게임의 백미입니다. 한 명이 위로 나가 적을 끌고, 다른 한 명이 본부 근처에 남아 새는 적을 막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말을 맞추지 않아도 몇 판 하다 보면 서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러다 한쪽이 욕심내서 둘 다 위로 올라간 순간 본부가 터지는 것이 늘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아군 총알이 서로를 잠시 멈추게 하는 것도 변수입니다. 급한 마음에 앞에 있는 동료를 쏴서 움직임을 묶어 버리는 바람에 상황이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둘이 하면 쉬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방해하다 더 빨리 끝나는 판도 많습니다. 이 티격태격이 이 게임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규칙의 힘
이 게임은 조작이 방향 넷과 발사 하나가 전부입니다.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몇 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벽을 어떻게 깎아 길을 낼지, 어느 길목을 먼저 막을지 같은 판단이 계속 필요해서 실력 차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배우기 쉽고 파고들 여지가 있는 구성이 이 게임을 세대를 건너 살아남게 했습니다.
후대의 탱크 게임이나 방어 중심 게임들이 여기서 나온 뼈대를 여러 형태로 다시 썼습니다. 오락실판을 지금 해 보면 집에서 하던 기억과 미묘하게 다른 손맛이 있는데, 원래 알던 게임이라고 방심했다가 초반부터 본부를 내주기 쉬우니 처음 몇 판은 뒤를 지키는 데 신경 쓰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