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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

파리아 (Faria a World of Mystery Danger USA) · 1991 · Nex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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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컴 롤플레잉인데 화면을 보면 젤다 쪽에 가깝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필드를 걸어 다니고, 칼은 명령을 고르는 게 아니라 버튼을 눌러 직접 휘두릅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가면 상점에서 장비를 사고 여관에서 자며 레벨을 올리는, 영락없는 롤플레잉의 절차가 기다립니다. 두 장르를 어정쩡하게 섞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그 조합 자체가 드물었습니다.

파리아(Faria a World of Mystery Danger)는 파리아라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붙잡힌 공주를 찾고 마을마다 걸린 문제를 풀어나가는 액션 롤플레잉입니다. 필드를 걸어 다니다 적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칼로 베고, 경험치가 쌓이면 능력치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파리아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1)

걸어 다니며 싸운다

전투에 별도 화면이 없습니다. 필드에 돌아다니는 몬스터에게 다가가 칼을 휘두르면 그게 전투이고, 맞으면 체력이 깎입니다. 명령을 고르고 기다리는 시간이 없으니 진행이 빠른 대신, 손이 느리면 잡몹 몇 마리에게도 순식간에 체력을 뺏깁니다.

능력치는 싸움에서 얻는 경험으로 오릅니다. 초반에는 공격 한 번에 죽지 않는 적조차 부담스러워서, 마을 근처에서 안전하게 싸울 수 있는 만큼 싸워 체력을 먼저 올려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무리해서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초반에 가장 많이 겪는 실패입니다.

장비는 상점에서 삽니다. 칼이 좋아지면 한 번에 주는 피해가 늘고, 방어구가 좋아지면 버티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 중 어디에 먼저 쓸지 정해야 하는데, 이 게임은 맞으면서 버티는 상황이 자주 생기므로 방어를 조금 앞세우는 쪽이 무난합니다.

파리아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1)

마을과 단서

진행의 뼈대는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가져와야 문이 열리는지가 대화 안에 흩어져 있어서, 마을에 들어가면 사람을 한 명씩 다 붙잡고 말을 걸어야 합니다. 지나친 한 사람이 다음 지역으로 가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던전은 필드 곳곳에 입구가 있고, 안은 통로가 갈라지는 미로 구조입니다. 안에서 얻는 물건이 다음 지역의 문을 여는 조건인 경우가 많아서 순서를 건너뛸 수 없습니다. 지도를 그려두지 않으면 같은 갈림길을 몇 번씩 돌게 되므로, 종이에 대충이라도 적어두는 편이 시간을 크게 아껴줍니다.

배를 얻고 나면 이동 범위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그전까지 걸어서 못 가던 섬과 해안이 열리고,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넓었는지가 그때 드러납니다. 이 지점이 게임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입니다.

어디서 막히나

가장 흔한 벽은 안내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다음 목표를 화면에 표시해 주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흘려듣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필드를 헤매게 됩니다. 막혔다 싶으면 새 지역을 찾기 전에 이미 다녀온 마을을 다시 돌며 대화를 확인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난이도가 튀는 구간은 대체로 지역 경계입니다. 새 지역으로 넘어가면 적의 체력과 공격력이 한 단계 뛰는데, 준비 없이 넘어가면 몇 걸음 만에 죽습니다. 넘어가기 전에 그 앞 지역에서 장비를 한 등급 올리고 능력치를 조금 더 쌓아두면 체감 난이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회복 수단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부담입니다. 여관에서 자는 것이 확실한 회복 방법인데 돈이 들고, 멀리 나갔을 때는 돌아오는 길 자체가 위험합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체력을 가득 채우고, 절반 아래로 떨어지면 무리하지 말고 나오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시대 속의 자리

패미컴에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액션 롤플레잉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명령을 골라 싸우는 방식이 주류였던 시기에 칼을 직접 휘두르는 조작을 얹고, 거기에 상점과 레벨업이라는 롤플레잉의 뼈대를 그대로 남긴 구성은 지금 보면 과도기의 실험처럼 읽힙니다.

완성도가 고르지는 않습니다. 화면 밖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이나 반복되는 필드 이동은 요즘 기준으로 답답합니다. 그래도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며 다음 단서를 찾아내는 재미는 분명하고, 배를 얻어 처음 바다로 나가는 장면 같은 대목은 지금 해도 남습니다.

국내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닙니다. 영어 대화를 읽어야 진행되는 구조라 문방구 복사팩으로 접한 사람들 대부분이 초반에서 멈췄고, 그 결과 화면은 본 적 있어도 끝까지 간 사람은 드문 게임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