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아가의 탑 오락실판
드루아가의 탑 (The Tower of Druaga New Ver) · 1984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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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마다 보물이 하나씩 숨어 있는데, 그 보물이 나오는 조건을 게임이 절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어떤 층은 특정 적을 잡아야 나오고, 어떤 층은 정해진 자리에 서 있어야 나오고, 또 어떤 층은 칼을 뽑았다 넣었다 해야 나옵니다. 이 조건들을 알아내는 것이 사실상 이 게임의 본체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혼자 힘으로는 거의 알아낼 수 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드루아가의 탑(The Tower of Druaga)은 미로처럼 생긴 층을 하나씩 올라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각 층에는 문을 여는 열쇠가 있고, 열쇠를 먹고 문으로 들어가면 다음 층으로 올라갑니다. 그 사이를 적들이 돌아다니고, 층마다 숨겨진 보물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목표는 60층을 올라 붙잡힌 인물을 구하는 것입니다.
싸움의 규칙
주인공은 칼과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레버를 미는 방향으로 걷고, 버튼을 누르면 칼을 앞으로 뻗습니다. 이 칼이 나와 있는 동안 적과 부딪히면 적이 죽고, 칼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부딪히면 내가 죽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묘합니다. 칼을 뻗은 채로는 이동 속도가 느려지고, 방패로 막을 수 있는 공격과 못 막는 공격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마법을 쓰는 적이 특히 까다롭습니다. 방패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면 마법을 막아내지만, 옆이나 뒤에서 날아오면 그대로 맞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이동은 늘 "어느 쪽을 보고 있느냐"를 신경 쓰면서 이뤄집니다. 그냥 최단 거리로 달리다 보면 등 뒤에서 날아온 것에 당하기 십상입니다.
보물이라는 수수께끼
각 층의 보물은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이동 속도를 올려 주거나, 특정 적의 공격을 막아 주거나, 아예 없으면 위층을 통과할 수 없는 물건도 있습니다. 문제는 출현 조건입니다. 적을 정해진 수만큼 잡거나, 특정 위치를 밟거나, 특정 순서로 행동해야 나타납니다. 화면에는 아무런 힌트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나온 당시부터 정보를 나누며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누가 몇 층의 조건을 알아냈다는 이야기가 오락실에서 오갔고, 그 정보가 모여야 위층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혼자 앉아 다 풀어내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라, 여럿이 알아낸 걸 합쳐야 완성되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불친절하지만, 그 시절에는 이 불친절함이 곧 이야깃거리였습니다.
어디서 막히는가
초반 몇 층은 보물 없이도 넘어갑니다. 하지만 층이 올라갈수록 적이 늘고 미로가 복잡해지며, 특정 보물이 없으면 사실상 통과가 불가능한 층이 나옵니다. 앞 층에서 보물을 놓쳤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는 구조라,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벽이 갑자기 높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요령이라면 서두르지 않는 겁니다. 각 층에는 제한 시간이 있지만, 열쇠와 문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적의 움직임을 살핀 뒤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급하게 뛰어들어 적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흔한 죽음의 원인입니다.
남긴 것
이 게임은 남코가 팩맨과 갤러가로 이름을 알린 뒤에 나왔습니다. 미로를 돌아다닌다는 점에서 팩맨의 흔적이 보이지만, 칼과 방패, 보물과 성장 요소를 넣으면서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후 액션 롤플레잉 계열에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꼽히고, 실제로 시리즈로도 이어졌습니다.
숨겨진 조건을 알아내며 나아간다는 방식은 이후 여러 게임이 변주했습니다. 다만 이 정도로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예는 드뭅니다. 좋게 보면 대담한 설계이고, 나쁘게 보면 정보 없이는 못 하는 게임입니다. 그 양면이 이 작품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국내에서는 같은 시기 일본만큼 널리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조건을 알아야 진행되는 구조라 정보가 돌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고, 그 정보가 국내까지 충분히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층 올라가다 막히고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어떤 층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낼 방법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시절 오락실에서 이루지 못한 등반을 이제야 해 볼 수 있습니다. 조건을 하나씩 확인하며 층을 올리다 보면, 왜 이 게임이 오래 이야기되는지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