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아가의 탑 MSX판
드루아가의 탑 (Tower of Druaga) · 1986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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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 주지 않는 보물의 조건
이 게임의 각 층에는 보물 상자가 하나씩 숨어 있는데, 그것을 나타나게 하는 조건을 게임이 전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어떤 층은 특정 적을 정해진 수만큼 잡아야 하고, 어떤 층은 벽을 몇 개 만들어야 하고, 어떤 층은 그냥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나옵니다. 조건은 층마다 제각각이고 힌트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오락실에서는 이 조건들을 알아낸 사람이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공책에 층별 조건을 적어 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그 공책이 친구들 사이에서 돌았습니다. 지금 보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설계인데, 그 불친절함이 오히려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다는 게 이 게임의 특이한 지점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드루아가의 탑 MSX판(The Tower of Druaga)은 기사 길이 60층짜리 탑을 한 층씩 올라가며 붙잡힌 카이를 구하러 가는 미로 액션입니다. 각 층은 벽으로 나뉜 미로이고,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나가면 다음 층으로 올라갑니다.
적은 몸에 닿기만 해도 위험합니다. 검을 뽑아 들고 적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쳐야 처치할 수 있는데, 검을 뽑은 상태에서는 이동이 느려지고 방향 전환도 둔해집니다. 그래서 언제 검을 뽑고 언제 집어넣을지가 이 게임 조작의 핵심입니다.
보물이 만드는 격차
숨겨진 보물은 단순한 점수가 아닙니다. 갑옷을 얻으면 특정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방패를 얻으면 마법을 튕겨 내고, 신발을 얻으면 이동이 빨라집니다. 어떤 보물은 없으면 후반 층을 사실상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순서가 중요합니다. 앞쪽 층에서 특정 보물을 놓치면 뒤쪽 층에서 막히는데, 되돌아갈 수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60층을 다 오르는 것보다 각 층에서 필요한 걸 빠짐없이 챙기는 게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적의 성격
적마다 행동 방식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무작정 이쪽으로 달려드는 것, 벽을 통과해서 오는 것, 마법을 쏘는 것, 검이 통하지 않아 특정 조건에서만 잡히는 것까지 있습니다. 어떤 적이 나왔는지 보고 즉시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특히 무서운 건 마법을 쏘는 적입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날아오기 때문에, 모퉁이를 돌 때 조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당합니다. 미로를 돌아다닐 때 무작정 직진하지 않고 모퉁이마다 한 박자 쉬는 습관이 생기는 게 이 게임입니다.
이 계보가 남긴 것
이 게임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숨겨진 요소를 찾아내는 재미 그 자체입니다. 게임 안에서 다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밖에서 정보를 나누게 만드는 방식은 이후 여러 게임에 영향을 줬습니다.
또 미로를 돌아다니며 장비를 모아 강해진다는 구조는 이후 나오는 액션 RPG들의 밑그림이 되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미로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발상이 이후 장르 전체에 퍼져 나간 셈입니다. 지금 해 보면 여전히 불친절하지만, 한 층씩 조건을 알아 가며 오르는 그 감각만큼은 다른 게임에서 찾기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