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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월드

디지몬 월드 (Digimon World) · 1999 · Ba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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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안 주면 정말 죽는다

디지몬 월드를 처음 잡은 사람들이 가장 크게 당황하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내 디지몬은 배가 고파지고, 피곤해지고, 화장실에 가야 합니다. 이걸 챙겨 주지 않으면 능력치가 떨어지고, 방치가 이어지면 수명이 다해 떠납니다. 싸움만 잘하면 되는 게임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간이 실제로 흐릅니다. 낮과 밤이 바뀌고, 밤에 재우지 않으면 다음 날 상태가 나빠집니다. 이 세세한 관리가 부담스러워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이것 때문에 애착이 생겨 몇 번씩 다시 키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정이 붙는 구조입니다.

디지몬 월드 RPG 게임 화면 1 - 플레이스테이션 (1999)

어떤 게임인가

디지몬 월드(Digimon World)는 디지털 몬스터가 사는 세계로 넘어가, 자기 디지몬을 키우면서 흩어진 주민들을 파일 시티로 데려와 마을을 되살리는 게임입니다. 큰 목표는 도시를 다시 번성시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른 디지몬을 만나고 설득하고 싸웁니다.

싸움은 직접 조작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내 디지몬이 스스로 움직이고, 나는 옆에서 기술을 쓰라거나 물러나라고 지시를 내리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전투에서 이기려면 그 자리에서 잘 조작하는 것보다, 평소에 잘 키워 두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진화라는 도박

이 게임의 핵심은 진화입니다. 어린 상태의 디지몬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데, 무엇으로 진화할지는 그동안 내가 어떻게 키웠느냐로 정해집니다. 어느 능력치를 많이 올렸는지, 훈련을 얼마나 시켰는지, 실수로 죽인 횟수가 얼마인지, 화장실 실수를 몇 번 했는지까지 조건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조건이 게임 안에서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키웠는데 전혀 원치 않던 모습으로 진화하는 일이 흔합니다. 강한 디지몬을 노리고 조건을 맞추려다 어긋나서 약한 쪽이 나오면 허탈합니다. 반대로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대로 기억에 남습니다.

수명이 정해져 있어서, 한 디지몬을 영원히 데리고 다닐 수는 없습니다. 떠나보내고 다음 세대를 다시 키우는 순환이 이 게임의 뼈대입니다.

마을을 키우는 재미

세계 곳곳에는 디지몬들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만나 조건을 들어주거나 싸워서 인정받으면 파일 시티로 옮겨 오는데, 주민이 늘어날 때마다 마을에 새로운 가게와 시설이 생깁니다. 회복 시설, 훈련장, 도구 가게 같은 것들이 하나씩 열립니다.

이 구조가 좋은 이유는 진행의 보람이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텅 빈 폐허 같던 마을이, 몇십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북적이는 곳으로 바뀝니다. 어떤 주민을 데려오느냐에 따라 마을 모습이 달라지므로, 사람마다 다른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처음 하면 막히는 지점

가장 흔한 실패는 초반에 무리해서 먼 곳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마을 근처의 적도 버거운 상태에서 깊은 지역에 들어가면 계속 지고, 지면 능력치도 떨어집니다. 처음에는 마을 주변을 돌며 훈련에 집중하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두 번째는 훈련과 관리의 균형입니다. 능력치를 올리겠다고 훈련만 시키면 피로가 쌓여 오히려 상태가 나빠집니다. 훈련하고, 먹이고, 재우는 주기를 만들어 두고 그 리듬을 지키는 것이 결국 가장 효율적입니다.

세 번째는 화장실입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걸 놓치면 진화 조건이 어긋납니다.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로 데려가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육성 게임의 계보에서

이 작품은 휴대용 육성 기계로 시작한 디지몬을 본격적인 가정용 게임으로 옮긴 초기 작품입니다. 그 뿌리 때문에 키우고 돌보는 요소가 이렇게 강하게 남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몬스터 수집 게임들이 잡아서 모으는 쪽에 무게를 뒀다면, 이쪽은 한 마리와 오래 지내는 쪽을 골랐습니다.

국내에서도 디지몬은 애니메이션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고, 그 세계를 직접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손이 갔습니다. 다만 진화 조건이 불친절해 공략을 구해 가며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정보를 나누던 것 자체가 이 게임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