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 워
레슬 워 (Wrestle War SET 3 World 8751 317 0103) · 1989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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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프로레슬링 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대개 정타를 때리는 순간이 아닙니다. 상대를 잡아 코너로 밀고, 로프에 튕겨 보내고, 돌아오는 몸을 받아 바닥에 꽂는 그 한 박자입니다. 이 게임은 그 감각을 화면 가득한 큼직한 캐릭터로 보여줍니다.
레슬 워(Wrestle War)는 세가가 1989년에 내놓은 프로레슬링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링 하나를 정면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선수 하나를 조종해 상대를 눕히고 다음 상대로 넘어가며 정상까지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격투 게임이 아직 대전 중심으로 정리되기 전, 스포츠 쪽에서 격투감을 뽑아내던 시기의 물건입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조작은 레버와 버튼 몇 개로 단순합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때리고 차고, 붙으면 잡기로 넘어갑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그 잡기입니다. 붙잡은 상태에서 레버를 어느 쪽으로 넣느냐에 따라 던지기, 메치기, 코너로 몰기 같은 다른 기술이 나갑니다. 그래서 같은 상대를 상대해도 사람마다 경기 풀리는 모양이 달라집니다.
로프를 쓰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상대를 로프 쪽으로 밀어 튕겨 보낸 뒤 돌아오는 타이밍에 기술을 걸면 훨씬 큰 피해가 들어갑니다. 반대로 자기가 로프에 튕겨 나갈 때 상대가 대기하고 있으면 크게 얻어맞습니다. 링이 좁아 보여도 이 밀고 당기는 공간 싸움이 승부를 가릅니다.
승리 조건은 프로레슬링 그대로입니다. 상대를 충분히 지치게 만든 뒤 눌러 카운트를 세는 것입니다. 다 눕혔다고 방심하면 상대가 카운트 도중에 빠져나가고, 그 사이에 이쪽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 은근히 압박입니다.
난이도가 튀는 지점
초반 상대는 패턴이 단순해서 잡기 몇 번이면 정리됩니다. 문제는 중반 이후입니다. 상대가 이쪽 기술에 반격을 넣기 시작하고, 잡으려고 다가가는 순간을 노려 먼저 때립니다. 여기서부터는 무작정 달려들어 붙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요령은 한 박자 기다리는 것입니다. 상대가 먼저 손을 뻗게 만들고, 그 동작이 끝나는 틈에 들어가 잡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게임은 잡기가 성공하면 크게 이득이지만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크게 얻어맞는 구조라, 성공률이 곧 실력입니다.
체력이 깎이면 회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한 경기를 얼마나 깨끗하게 끝내느냐가 다음 경기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판이라도 대충 하지 않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 세가의 기판
1989년 무렵 세가는 대형 캐릭터를 큼직하게 굴리는 데 강점을 보이던 시기입니다. 스프라이트를 크게 쓰고 동작을 잘게 쪼개 넣어서, 화면 안의 인물이 실제 무게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향이었습니다. 이 게임의 던지기 동작이 유난히 시원해 보이는 것도 그 덕입니다.
프로레슬링을 다룬 오락실 게임 자체는 이 시기에 여럿 있었습니다. 다만 대개는 두 명이 붙어 우당탕 싸우는 난투에 가까웠고, 이 작품처럼 잡기 방향과 로프 활용을 정면에 내세운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격투 게임의 문법이 아직 정해지기 전이라 이런 식의 접근이 나올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오락실에서의 자리
국내 오락실에 이 기판이 들어온 곳은 있었지만, 같은 시기 슈팅이나 벨트스크롤 액션에 밀려 오래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이라는 소재 자체가 당시 국내 오락실 손님들에게 특별히 익숙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개 우연히 한 번 붙잡았다가 던지기 한 방이 시원해서 몇 판 더 넣어본 쪽입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조작이 단순한 만큼 몇 분이면 요령이 잡히고, 상대를 로프에 튕겨 정확히 받아 꽂았을 때의 손맛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짧게 붙잡아 보기 좋은 물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