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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사이트 리그

엑사이트 리그 (Excite League fd1094 317 0079) · 1988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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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서 야구를 한다는 것

1980년대 후반 오락실에서 야구 게임은 묘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한 판이 길고, 점수가 아니라 승부로 끝나며, 무엇보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실제로 붙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르였습니다. 슈팅이나 액션은 결국 기계와 싸우는 것이지만, 야구는 마주 앉은 사람과 싸웁니다. 그래서 야구 기판 앞에는 늘 구경꾼이 붙었습니다.

이 작품은 세가가 그 시장에 내놓은 야구 게임입니다. 당시 세가의 주력 기판 위에서 돌아갔는데, 이 기판은 화려한 스프라이트와 매끄러운 확대·축소로 이름이 높았던 계열입니다. 그 성능을 야구에 쓰면 어떤 화면이 나오는지를 보여 주는 물건입니다.

엑사이트 리그 스포츠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8)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엑사이트 리그(Excite League)는 두 명이 마주 앉아 겨루는 아케이드 야구 게임입니다. 조작은 8방향 조이스틱과 버튼 세 개로, 공격 때는 타격과 주루를, 수비 때는 투구와 송구를 맡습니다. 규칙은 실제 야구를 따르지만, 아케이드답게 한 경기가 지나치게 길어지지 않도록 이닝 수와 진행 속도가 조정되어 있습니다.

한 경기의 흐름은 익숙합니다. 투수가 구종과 코스를 정해 던지고, 타자는 타이밍을 맞춰 휘두릅니다. 공이 맞아 나가면 화면이 바뀌면서 야수를 조작해 공을 잡고, 주자의 위치를 보며 어느 베이스로 던질지 정합니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설명 없이도 바로 앉을 수 있습니다.

엑사이트 리그 스포츠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8)

투수와 타자의 눈치 싸움

이런 아케이드 야구의 승부는 대부분 투타 심리전에서 갈립니다. 투수 쪽은 조이스틱으로 공이 들어갈 코스를 정하고, 던진 뒤에도 어느 정도 궤도를 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한가운데로 던지는 일은 거의 없고, 바깥쪽으로 빼다가 결정구를 안쪽으로 붙이는 식의 배합을 씁니다.

타자 쪽 요령은 휘두르는 타이밍보다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초보는 화면에 공이 보이자마자 버튼을 누르는데, 이러면 유인구에 계속 걸립니다. 몇 타석 정도는 손해를 감수하고 상대가 어떤 순서로 던지는지 보는 편이 낫습니다. 아케이드 야구는 던지는 사람도 사람이라, 습관이 반드시 드러납니다.

수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실수는 송구할 베이스를 잘못 고르는 것입니다. 공을 잡은 순간 주자가 어디 있는지 화면에서 확인할 시간이 짧기 때문에, 타구가 뜨는 순간 미리 어디로 던질지를 정해 두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잡고 나서 고민하면 이미 늦습니다.

그 시절 기판 사정

1988년의 세가는 아케이드에서 전성기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대형 체감형 기계로 이름을 알린 한편, 표준형 캐비닛에 들어가는 기판으로도 다양한 장르를 쏟아 내던 시기였습니다. 이 게임이 올라간 기판은 그 시기 세가의 주력으로, 액션과 슈팅부터 스포츠까지 여러 장르를 소화했습니다.

여기에는 기술적으로 재미있는 사정이 하나 있습니다. 당시 세가는 기판 복제를 막기 위해 프로그램을 암호화한 특수 CPU를 썼습니다. 정품 기판이 아니면 게임이 제대로 돌지 않게 만든 장치인데, 이 방식은 오랫동안 복제를 막는 데 효과를 봤습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특수 CPU 안의 정보가 배터리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문제가 생겼고, 그 때문에 한동안 원본 그대로 돌려 볼 수 없던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도 그런 계열에 속합니다.

한국 오락실에서의 야구 게임

한국 오락실에서 야구 게임의 인기는 시기에 따라 오르내렸습니다. 프로야구가 자리를 잡으면서 야구 자체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오락실에서는 한 판이 짧고 회전이 빠른 게임이 선호됐기 때문에 야구 기판이 여러 대 깔리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보통 오락실 한쪽에 한 대 정도 놓여 있고, 야구를 좋아하는 단골들이 그 앞에 모이는 식이었습니다.

그래도 둘이 마주 앉아 아홉 이닝을 붙는 경험은 다른 장르가 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전 격투가 몇십 초 만에 끝나는 승부라면, 야구는 한 회씩 쌓아 가며 역전을 노리는 긴 승부였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다시 잡아 보면, 그 시절 오락실에서 야구 기판 앞에만 흐르던 느긋한 시간 감각이 꽤 선명하게 되살아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