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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비 키즈

키드노 호레호레 대작전 (Kid no Hore Hore Daisakusen) · 1987 · Nichibu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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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적이 그 위를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빠지면 위에서 흙을 덮어 묻어 버립니다. 직접 때려서 없애는 게임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함정을 놓고 기다리는 것을 주된 공격 수단으로 삼은 이 발상이 이 게임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원래 붙이려던 제목도 함정을 뜻하는 단어에서 온 부비 키즈였고, 가정용으로 나올 때는 실제로 그 이름이 쓰였습니다.

키드노 호레호레 대작전(Kid no Hore Hore Daisakusen)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에서 주인공을 조작해 구덩이를 파고, 쫓아오는 적을 빠뜨려 없애며 보물을 모으는 미로 액션 게임입니다. 23세기에서 시간의 미로에 휘말린 주인공이 원래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 각 시대를 헤쳐 나간다는 설정이 붙어 있습니다.

부비 키즈 액션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7)

파고 묻는 리듬

기본 동작은 세 가지입니다. 이동하고, 땅을 파고, 구덩이를 메웁니다. 파는 데도 메우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적이 코앞에 있을 때 파기 시작하면 파는 도중에 잡힙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적이 다가올 길목을 미리 읽고 한 발 앞서 준비하는 게임이 됩니다.

구덩이에 빠진 적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시 버둥거리다 다시 기어 나오므로, 빠뜨린 다음 재빨리 위로 흙을 덮어야 처리가 끝납니다. 여러 마리를 한 구덩이에 몰아넣고 한꺼번에 묻으면 점수가 크게 오르는 구조라, 욕심을 내면 노림수가 생기고 그만큼 위험해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아무 데나 구덩이를 파 놓고 기다립니다. 그러면 적은 그 구덩이를 피해 돌아옵니다. 좁은 통로나 적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자리에 파야 걸립니다. 이 자리 잡기가 이 게임의 실력입니다.

부비 키즈 액션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7)

스테이지 구성

각 판마다 배경 주제가 뚜렷합니다. 도시가 나오는 판이 있고, 공룡이 어슬렁거리는 선사 시대가 있으며, 군사 기지나 로봇들이 돌아다니는 판도 있습니다. 시간의 미로를 헤맨다는 설정이 화면으로 그대로 드러나는 구성입니다.

주제가 바뀌면 적의 성격도 바뀝니다. 단순히 플레이어를 따라오기만 하는 적이 있는가 하면, 먼 거리에서 곧장 달려드는 적이나 구덩이에 잘 빠지지 않는 적도 섞입니다. 그래서 새 판이 시작되면 처음 한동안은 공격보다 관찰에 시간을 쓰는 편이 좋습니다.

아이템도 여럿 나옵니다. 잠시 무적이 되거나 적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라, 위기 상황에서 꺼내면 판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템이 놓인 자리가 대체로 위험한 구석이라, 가지러 가는 길을 계산하지 않으면 얻고도 잡힙니다.

어디서 어려워지는가

난이도가 튀는 지점은 적의 수가 아니라 통로의 폭입니다. 넓은 곳에서는 도망 다니며 여유롭게 팔 수 있지만, 통로가 좁아지는 판이 오면 파는 동안 피할 곳이 없습니다. 이런 판에서는 미리 통로 여러 곳에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사이를 오가는 식으로 안전지대를 만들어 둬야 합니다.

또 하나는 시간입니다. 오래 끌면 적이 늘어나거나 빨라지는 압박이 들어옵니다. 적을 한 마리씩 정성껏 처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되므로, 판이 시작되면 지체 없이 움직여 초반에 수를 줄여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둘이서 하면 성격이 달라집니다. 한 명이 적을 끌고 다니고 다른 한 명이 구덩이를 파는 역할 분담이 가능해져, 혼자 할 때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굴 수 있습니다.

니치부츠라는 회사

만든 곳은 니치부츠, 일본물산이라는 이름의 오락실 기판 회사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슈팅과 액션을 꾸준히 내던 곳으로, 크게 히트한 대작보다는 개성 있는 중소 규모 기판을 여럿 남겼습니다. 이 게임도 그 계열에 속합니다.

땅을 파고 적을 묻는다는 구조 자체는 1980년대 초의 굴착 액션 계보 위에 있습니다. 다만 그 계보의 게임들이 대개 흙을 파며 길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 게임은 함정을 놓고 기다리는 심리전 쪽으로 무게를 옮겨 놓았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뻗은 셈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1987년이면 국내 오락실에도 일본 기판이 활발히 들어오던 시기입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은 캐릭터가 귀엽고 규칙이 한눈에 보여, 어린 손님이 많은 동네 오락실이나 문방구 앞 기계에 잘 어울렸습니다. 둘이서 함께 앉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제목이 길고 일본어라 정확히 부르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대개는 화면을 보고 땅 파는 게임 정도로 통했습니다. 지금 다시 잡아 보면 조작이 셋뿐이라 금방 익숙해지고, 구덩이를 파고 기다리는 그 짧은 긴장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