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오프
킥 오프 (Kick Off Japan) · 1988 · Jale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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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같은 다른 축구 게임이 있습니다
축구 게임에서 킥 오프라는 이름은 조금 헷갈립니다. 비슷한 시기 컴퓨터 쪽에서 유럽을 휩쓴 동명의 축구 게임이 따로 있어서, 이름만 보고 그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락실 기판에 들어 있던 이 게임은 일본 자레코가 만든 별개의 물건입니다.
1988년은 오락실 축구가 아직 형태를 잡아 가던 때입니다. 그라운드를 어떤 시점으로 보여 줄지, 열한 명을 어떻게 한 손으로 다루게 할지에 대해 회사마다 답이 달랐습니다. 이 게임이 내놓은 답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과 버튼 두 개였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3분짜리 한 판
킥 오프(Kick Off)는 그라운드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화면이 아래위로 흐르는 축구 게임입니다. 스무 개 남짓한 나라 대표팀 가운데 하나를 고르고, 공격수와 수비수와 골키퍼를 갖춘 열한 명으로 경기를 치릅니다. 한 경기가 3분 안팎으로 끝나기 때문에 실제 축구보다 훨씬 빠르게 골이 오갑니다.
조작할 선수는 공에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자동으로 넘어갑니다. 방향 레버로 달리고, 버튼 하나는 패스, 하나는 슛에 해당합니다. 수비를 할 때는 같은 버튼이 태클과 가로채기로 바뀝니다. 버튼을 얼마나 길게 누르느냐로 공을 차는 세기가 달라지므로, 짧게 툭 대는 패스와 길게 넘기는 크로스를 손끝으로 나눠 써야 합니다.
버튼 두 개로 축구를 시키는 요령
처음 잡으면 공을 잡은 선수만 계속 달리다가 수비 서너 명에게 둘러싸여 뺏기기 십상입니다. 이 시절 축구 게임의 수비는 대체로 공을 향해 곧장 달려들기 때문에, 한 명이 붙는 순간 옆으로 짧게 떼어 놓는 습관을 들이면 소유권을 훨씬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
골은 정면 돌파보다 측면에서 만들어집니다. 화면이 세로로 흐르는 구조라 골문 정면은 늘 붐비고, 골키퍼도 정면 슛에는 강합니다. 옆으로 넓게 벌려 수비를 끌어낸 뒤 문전으로 올려 주는 쪽이 훨씬 잘 들어갑니다. 슛도 골키퍼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반대쪽 구석을 노리는 편이 낫습니다.
수비에서는 태클 버튼을 아무 때나 누르지 않는 것이 요령입니다. 헛치면 그대로 제쳐지기 때문에, 상대가 공을 크게 앞으로 밀어 놓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끊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거기서 끝납니다
오락실 스포츠 게임의 규칙은 대개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겨야 다음 상대가 나오고, 지거나 비기면 동전을 더 넣으라는 화면이 뜹니다. 3분이라는 시간은 짧아서 한 골 차 승부가 계속 이어지고, 후반 막판에 한 골을 먹으면 그대로 판이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앞서고 있을 때의 운영이 중요합니다. 한 골을 넣고 나면 무리하게 밀고 올라가기보다 중원에서 공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쪽이 이깁니다. 반대로 두 명이 붙어 대전을 하면 이 시간 제한이 오히려 재미가 됩니다. 한 판이 3분이라 줄 서 있는 사람도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팀 선택도 겉치레가 아닙니다. 나라마다 선수들의 속도와 슛 위력이 조금씩 다르게 잡혀 있어서, 빠른 팀을 고르면 측면 돌파가 편하고 힘이 좋은 팀을 고르면 먼 거리에서 때리는 슛이 통합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익숙한 강팀을 고르게 되지만, 몇 판 해 보면 자기 조작 습관에 맞는 팀이 따로 생깁니다.
1988년의 축구 게임들 사이에서
오락실 축구의 시작은 트랙볼을 굴려 공을 차던 몇 년 전 작품들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그 뒤를 이어 레버와 버튼이라는 평범한 조작으로 돌아온 쪽에 속합니다. 조작 장치를 따로 달지 않아도 되니 업주 입장에서 들여놓기 쉬웠고, 대신 트랙볼 특유의 손맛은 사라졌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 축구 게임은 옆에서 보는 시점과 화려한 연출로 넘어갑니다. 몇 년 뒤 나온 축구 게임들과 나란히 놓으면 이 게임은 확실히 소박합니다. 대신 규칙이 단순하고 한 판이 짧아서, 축구 게임을 처음 잡는 사람도 몇 분이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화면 구성도 이 시절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라운드 전체가 아니라 공 주변만 보여 주기 때문에, 멀리 있는 동료가 어디쯤 있는지는 흐름을 기억해 짐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길게 넘기는 패스는 도박에 가깝고, 짧게 이어 가며 화면 안에서 해결하는 쪽이 안전합니다.
한국 오락실의 축구 게임
한국 오락실에서 축구 게임은 늘 두 명이 붙는 자리였습니다. 혼자 컴퓨터를 상대하는 것보다 옆자리 친구와 한 골 차로 다투는 쪽이 훨씬 재미있었고, 진 사람이 다음 판 동전을 내는 규칙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습니다.
이 게임은 국내에서 특별히 유명한 축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90년대 초까지 동네 오락실 구석에는 이런 초기 축구 기판이 한두 대씩 남아 있었고, 화면이 세로로 흐르는 축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계열을 만져 봤을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