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그
트로그 (Trog REV la5 3 29 91) · 1990 · Mid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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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맨의 손자뻘 되는 게임
미로를 돌아다니며 흩어진 것들을 주워 모으고, 다 모으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그 사이 쫓아오는 놈들을 피해야 하고, 어쩌다 형세가 뒤집히면 이번에는 내가 쫓아가 잡아먹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 게임이겠지만, 이 게임은 그 뼈대에 통통한 3D 느낌의 그림과 네 명이 한꺼번에 붙는 난장판을 얹었습니다.
화면을 처음 보면 당시 오락실 기판치고 캐릭터가 유난히 입체적이라 눈에 띕니다. 이 시기 미드웨이는 실물 모형이나 컴퓨터로 만든 입체 이미지를 스프라이트로 찍어 넣는 방식을 즐겨 썼는데, 원시인과 공룡이 점토 인형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도트를 한 점씩 찍어 그린 캐릭터와는 질감이 확연히 다릅니다.
무슨 게임인가
트로그(Trog)는 원시인을 조종해 미로에 놓인 알을 전부 주워 모으는 액션 게임입니다. 판마다 알의 개수가 정해져 있고, 마지막 하나를 집는 순간 그 판이 끝납니다. 방해하는 것은 공룡입니다. 몸집 큰 공룡이 미로를 어슬렁거리다 원시인을 발견하면 쫓아오고, 붙잡히면 한 목숨이 날아갑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방향으로 움직이고 버튼으로 상황에 따른 행동을 합니다. 복잡한 커맨드나 무기 관리가 없어서, 레버를 처음 잡아 보는 사람도 한 판이면 규칙을 다 익힙니다. 어려운 것은 규칙이 아니라, 좁은 통로에서 공룡과 마주쳤을 때 어느 쪽으로 돌아야 살아남느냐 하는 판단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이런 미로 게임에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죽는 이유는 알을 눈으로 좇다가 등 뒤를 잊는 것입니다. 남은 알이 하나둘 줄어들수록 마음이 급해져서 최단 거리로 달려가게 되는데, 미로 게임에서 최단 거리는 대개 가장 위험한 길입니다. 갈림길이 많은 경로로 돌아가면 쫓기다가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깁니다.
두 번째로 익혀야 할 것은 막다른 길을 외우는 일입니다. 한 판을 몇 번 돌다 보면 어디가 막혀 있고 어디가 뚫려 있는지 몸에 남습니다. 쫓기는 상황에서 막다른 길로 뛰어드는 실수만 줄여도 생존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집니다.
세 번째는 욕심을 접는 타이밍입니다. 눈앞에 알이 하나 남았어도 공룡이 그 위를 지키고 있으면 일단 멀리 돌아 다른 알을 먼저 치우는 편이 낫습니다. 공룡이 자리를 옮길 때까지 기다리는 몇 초가 목숨 하나보다 쌉니다.
네 명이 붙으면 다른 게임이 됩니다
이 게임이 오락실에서 기억되는 이유는 4인 동시 플레이입니다. 미로 게임은 원래 혼자 조용히 집중하는 물건인데, 여기에 사람이 넷 붙으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알을 노리고 서로 먼저 집으려 달려들고, 공룡에게 쫓기는 친구를 방패 삼아 반대편으로 빠지는 얌체 짓도 나옵니다.
협력과 경쟁이 애매하게 섞여 있다는 점이 재미의 핵심입니다. 판을 넘기려면 알을 다 모아야 하니 결과적으로는 같은 편인데, 점수는 각자 따로 쌓이니 눈앞에서는 경쟁자입니다. 옆 자리에서 웃음과 원성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구조이고, 동전을 계속 넣게 만드는 힘도 여기서 나옵니다.
그 시절 미드웨이의 자리
미드웨이는 1970년대부터 미국 오락실을 지탱해 온 회사입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명작을 미국에 유통하기도 했고, 직접 만든 기판으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오락실 구석을 채우기도 했습니다. 이 게임이 나온 1990년 무렵은 미드웨이가 여러 명이 한 대에 붙는 큼직한 기판을 실험하던 시기였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흔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 들어온 격투 게임과 벨트스크롤 액션에 자리를 다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은 대개 한 곳에서만 본 기억으로 기억합니다. 미로 게임의 기본기는 그대로 살아 있고 규칙은 한 판이면 다 이해되니, 오래된 게임을 처음 들춰 보기에는 오히려 부담이 적은 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