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바리치
건바리치 (Gunbarich) · 2001 · Psi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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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회사가 만든 벽돌 깨기
사이쿄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개 화면 가득한 탄을 떠올립니다. 그런 회사가 벽돌 깨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자기네 슈팅 게임 주인공인 마녀를 그대로 데려와서 말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패들이 패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화면 아래에 놓인 것은 판때기가 아니라 핀볼 기계의 플리퍼 한 쌍이고, 버튼을 눌러 이 플리퍼를 튕겨서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쳐 올립니다. 벽돌 깨기와 핀볼을 붙여 놓고 거기에 슈팅 게임의 감각까지 얹은, 계보를 따지기 애매한 물건입니다.
어떤 게임인가
건바리치(Gunbarich)는 화면 위쪽을 채운 블록을 공으로 전부 부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벽돌 깨기입니다. 기본 골격은 익숙합니다. 공을 놓치지 않고 계속 받아 올리면서 블록을 지워 나가는 것입니다. 다만 받는 도구가 플리퍼라서 공을 그냥 튕겨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각도를 만들어 쳐 올릴 수 있고, 그 덕에 노린 자리를 정확히 공략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여기에 이 회사 출신다운 요소가 섞입니다. 화면 위쪽에는 적 캐릭터가 있고 이들이 탄을 쏘는데, 이 탄을 플리퍼로 되받아 칠 수 있습니다. 되받아 친 탄이 적에게 맞으면 큰 피해를 줍니다. 그러니까 이 게임에서 화면 아래로 날아오는 것들은 전부 위험 요소가 아니라 자원인 셈입니다. 공만 보고 있으면 반쪽만 하는 것이고, 날아오는 탄까지 계산해서 되쳐 넣기 시작해야 점수와 진행 속도가 함께 올라갑니다.
스테이지 구성과 기믹
전체는 일곱 개의 세계로 나뉘고 각 세계가 세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 일곱 번째 세계에만 네 번째 판이 더 붙습니다. 판마다 블록 배치가 다르고 여기에 기믹이 얹힙니다. 스위치를 맞히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부술 수 없는 장벽이 있고, 공이 지나가면 특정 방향으로 밀어 주는 컨베이어 벨트도 있습니다.
이런 기믹은 처음에는 방해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름길입니다. 부술 수 없는 장벽 뒤에 블록이 몰려 있을 때 그걸 억지로 뚫으려 하면 시간만 흘러갑니다. 스위치를 먼저 찾아 장벽을 치우고 나면 한 번에 정리됩니다. 컨베이어도 마찬가지로, 흐름에 공을 태워 보내면 손대기 어려운 구석 블록이 저절로 정리됩니다. 판마다 그 판이 요구하는 순서가 있고, 그 순서를 찾아내는 것이 이 게임의 퍼즐입니다.
캐릭터와 조작 요령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둘입니다. 이 회사의 슈팅 시리즈에 나오던 마녀 마리온과, 어린 해적 소년입니다. 성능 차이보다는 연출과 대사의 분위기가 다른 쪽에 가깝지만, 자기 캐릭터가 화면 아래에서 움직이며 반응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는 플리퍼를 계속 두들기는 것입니다. 벽돌 깨기의 패들처럼 생각하고 무조건 받으려 들면 오히려 엉뚱한 각도로 튀어 나가 공을 잃습니다. 플리퍼는 필요할 때만 치는 도구입니다. 공이 내려오는 궤도를 먼저 보고, 그 궤도가 원하는 방향으로 튕겨 나갈 타이밍에만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아무 때나 치면 공이 어디로 갈지 자기도 모릅니다.
두 번째 요령은 공을 위쪽에 오래 가둬 두는 것입니다. 블록 무리 사이의 틈으로 공을 밀어 넣어 그 안에서 계속 튀어 다니게 만들면 손을 대지 않아도 블록이 알아서 지워집니다. 벽돌 깨기의 오랜 정석인데, 이 게임은 플리퍼로 각도를 만들 수 있어서 그 틈을 노리고 넣는 것이 더 잘 통합니다.
사이쿄와 2001년의 오락실
사이쿄는 종스크롤 슈팅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입니다. 기체가 빠르게 움직이고 탄이 매섭게 날아드는, 다소 거칠고 속도감 있는 슈팅을 만들던 곳입니다. 2001년이면 슈팅으로 오락실을 채우기가 이미 어려워진 시기였고, 이 회사도 자기 간판 캐릭터를 다른 장르에 얹어 보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 게임이 바로 그 시도의 결과입니다.
이런 스핀오프에는 대개 두 가지 계산이 깔립니다. 하나는 익숙한 캐릭터로 기존 팬을 끌어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슈팅을 어려워하던 손님을 벽돌 깨기라는 문턱 낮은 장르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 계산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놓은 셈이라, 슈팅을 못 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붙을 수 있으면서 슈팅을 아는 사람에게는 탄을 되받아 치는 재미가 따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이 게임은 브라우저에서 바로 켜기에 특히 잘 맞습니다. 한 판이 짧고 규칙이 몇 초면 이해되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벽돌 깨기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오래됐지만 여기에 플리퍼와 탄 되받아 치기가 얹히면 손이 하는 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이 게임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의 오락실은 이미 리듬 게임과 대형 체감형 기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작은 2D 게임이 새로 들어올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아는 사람은 대개 나중에 찾아낸 사람들인데, 오히려 그 덕에 처음 켰을 때의 신선함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