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버 보이
다이버 보이 (Diver Boy) · 1992 · Ga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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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을 켜면 배경음악이 어딘가 익숙합니다. 데이터 이스트가 만든 텀블팝의 곡을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 초 유럽에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기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대형 업체들이 시장을 나눠 가진 상황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작은 회사들이 남는 부품과 남의 소재를 긁어모아 자기 기판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다이버 보이는 그런 유럽 변두리 오락실 산업이 남긴 물건 중 하나입니다.
다이버 보이(Diver Boy)는 잠수부를 조종해 바닷속을 오르내리며 조개를 모으고 그 안의 진주를 챙기는 액션 게임입니다. 물속을 지키는 것들이 계속 돌아다니므로 이들을 피하거나 처리하면서 화면에 있는 것을 다 주우면 다음 판으로 넘어갑니다. 두 명이 동시에 할 수 있고, 한 판이 짧게 끊어집니다.
뒤집어 놓은 봄잭
이 게임의 구조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봄잭을 물속에 담가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봄잭은 한 화면 안에 흩어진 폭탄을 전부 주우면 판이 넘어가는 게임이었는데, 여기서는 폭탄이 조개가 되고 점프가 헤엄이 됩니다.
차이는 이동 감각에 있습니다. 물속이라 위아래 이동이 자유롭고, 대신 관성이 붙어 원하는 자리에 딱 서기가 어렵습니다. 땅 위 플랫폼 게임처럼 발판을 딛고 정확히 서는 감각이 아니라, 미끄러지듯 흘러가며 목표에 붙는 감각입니다. 이 미끄러짐을 미리 계산하지 않으면 조개 바로 옆을 계속 스쳐 지나가게 됩니다.
수집 순서를 짜는 것도 재미의 일부입니다. 화면에 흩어진 것을 아무렇게나 주우면 이동 거리가 길어지고 그만큼 적과 마주칠 기회가 늘어납니다. 한 방향으로 돌면서 훑어 오는 경로를 잡으면 훨씬 안전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조심할 것
가장 큰 함정은 화면 구석입니다. 물속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구석까지 파고들게 되는데, 구석에서 적을 만나면 빠져나갈 방향이 없습니다. 조개 하나 때문에 구석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면, 근처에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는 식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적의 움직임 읽기입니다. 이런 구조의 게임에서 적은 대체로 정해진 경로를 반복합니다. 무작위처럼 보여도 몇 번 관찰하면 규칙이 보이고, 규칙을 알면 굳이 싸울 필요 없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세 번째는 두 명이 할 때의 동선입니다. 같은 조개를 향해 둘이 동시에 달려들면 서로 방해만 됩니다. 화면을 위아래로 나눠 각자 맡으면 판이 훨씬 빨리 끝납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유럽 사정
이 기판을 만든 곳은 스페인의 소규모 업체이고, 이탈리아 쪽 회사를 통해 유통됐습니다. 하드웨어는 그 시절 흔하던 구성으로, 16비트 주 프로세서와 별도의 음향 프로세서를 얹은 표준적인 조합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지만, 그래서 싸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남의 음악을 가져다 쓴 것은 명백한 문제입니다. 다만 그 시절 유럽 변두리 기판 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정식 라이선스를 받을 여력도, 그것을 단속할 체계도 부족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계열 기판들은 오늘날 정품과 복제품의 경계가 흐릿한 물건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림은 아기자기하고 색을 많이 써서 밝은 편이며, 조작에 큰 결함도 없습니다. 다만 발상이 남의 것을 빌려 온 데다 새로 더한 것이 적어서, 몇 판 하고 나면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었나
국내 오락실에 유럽산 기판이 정식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 오락실 기판은 대체로 일본 쪽에서 들어오거나 국내에서 복제되어 유통됐고, 스페인 회사 물건이 그 흐름에 끼어들 여지는 적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국내에서 실제로 봤다는 기억은 찾기 어렵고, 별명이 붙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지금 이런 게임을 해 보는 의미는 명작을 발굴하는 데 있다기보다, 그 시절 세계 각지에서 오락실 기판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흘러다녔는지를 실물로 확인하는 데 가깝습니다. 짧게 몇 판 잡아 보면 그 시절 유럽 오락실의 공기가 얼핏 잡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