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 1·2
드래곤 워리어 I·II (Dragon Warrior I Ii USA) · 2000 · E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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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됐다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여관에서 자면 체력이 차고, 밖에 나가면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싸워서 얻은 경험치로 레벨을 올리고, 번 돈으로 더 좋은 무기를 삽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이 흐름이, 처음부터 당연했던 건 아닙니다. 누군가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당연해진 것이고, 그 누군가가 이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1편은 정말 작은 게임입니다. 동료도 없이 혼자 다니고, 한 번에 몬스터 한 마리와 싸우며, 마을 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단출함 속에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질 규칙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무슨 게임인가
드래곤 퀘스트 1·2(Dragon Warrior I & II)는 시리즈의 첫 두 작품을 하나로 묶어 휴대용 기기에 옮긴 합본입니다. 북미에서는 오랫동안 드래곤 워리어라는 이름으로 나왔기 때문에 제목이 그렇게 붙어 있습니다.
두 편 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세계를 돌아다니고, 적을 만나면 화면이 바뀌어 차례대로 명령을 넣는 방식으로 싸웁니다. 싸울지 마법을 쓸지 도구를 쓸지 도망칠지 고르고, 그 결과를 글로 읽습니다. 화려한 연출이 없는 대신 판단 하나하나가 그대로 결과가 됩니다.
1편과 2편의 차이
두 편을 이어서 하면 차이가 확 드러납니다. 1편은 혼자서 한 마리와 싸우는 게임이고, 2편은 일행이 셋으로 늘고 적도 여럿이 한꺼번에 나옵니다. 이 변화 하나로 게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누가 앞에서 맞고 누가 마법을 쓸지, 회복을 언제 넣을지 같은 고민이 처음 생기는 지점이 2편입니다.
세계도 넓어집니다. 1편이 걸어서 다 볼 수 있는 크기라면, 2편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로 나가야 하는 규모입니다. 그만큼 길을 잃기도 쉬워서, 2편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 편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장치가 마을 사람의 말 몇 마디뿐이기 때문입니다.
난이도도 2편 쪽이 확실히 가파릅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적 여럿이 한 번에 강한 공격을 쏟아내는 구간이 나오고, 준비 없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전멸합니다. 이 시절 게임이 대체로 그랬듯, 답은 요령보다 레벨과 장비에 있습니다.
막힐 때 무엇을 해야 하나
초기 롤플레잉 게임에서 막히는 이유는 거의 두 가지입니다. 너무 약하거나, 다음에 갈 곳을 모르거나. 약한 경우의 처방은 단순합니다.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 싸우면서 레벨을 올리고 돈을 모아 장비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루해 보여도 이게 이 시절 게임의 정식 공략법입니다.
길을 모를 때는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다시 말을 거는 게 정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같은 사람이 다른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쳤던 한 마디 안에 다음 목적지가 들어 있는 일이 흔하니, 막혔다면 새 지역을 찾기 전에 익숙한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편이 빠릅니다.
하나 더, 이 계열의 게임은 저장이 곧 생명입니다. 멀리 나가기 전에 반드시 저장해 두는 습관이 없으면 한 번의 전멸로 긴 시간이 날아갑니다.
휴대용 합본이라는 형태
두 편을 한 장에 담아 작은 기기에서 돌린다는 발상은 이 시리즈와 잘 맞습니다. 원래 한 판에 오래 붙잡는 게임이 아니라 조금씩 레벨을 올리며 나아가는 게임이라, 짬이 날 때마다 꺼내 몇 분씩 싸우고 덮는 방식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옮기면서 화면도 손을 봤습니다. 원판의 투박한 그림 대신 색이 들어가고 글자도 읽기 편해졌으며, 원판에서 번거롭던 조작도 정리됐습니다. 원형 그대로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이쪽이 훨씬 넘어가기 쉽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시리즈가 일본이나 북미만큼 널리 퍼지지 못했습니다. 정식으로 들어온 적이 오래 없었고 글이 많은 장르라 언어의 벽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의 롤플레잉 게임이 왜 이런 모양인지를 알고 싶다면, 출발점을 직접 만져 보는 것만 한 방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