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 5
드래곤 퀘스트 V 천공의 신부 (Dragon Quest V Tenkuu no Hanayome Japan) · 1992 · E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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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용사가 아니다
롤플레잉 게임의 주인공은 대개 세상을 구할 운명을 타고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아이였고, 자라서는 노예로 끌려가 오랜 세월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마왕을 무찌를 용사는 따로 있고, 주인공은 그 용사를 찾아 세상을 헤맵니다.
이 설정이 이야기의 무게를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소년 시절 눈앞에서 아버지가 쓰러지는 장면, 몇 년이 지나 겨우 탈출한 뒤 다시 만나는 사람들, 자기 아이가 자라 함께 싸우게 되는 순간이 이어집니다. 게임을 하는 시간이 곧 주인공이 나이를 먹는 시간이라,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의 감정이 다른 작품과 다릅니다.
어떤 게임인가
드래곤 퀘스트 5(Dragon Quest V: Tenkuu no Hanayome)는 에닉스가 만든 시리즈 5편입니다. 소년기, 청년기, 그리고 아이가 생긴 뒤까지 삼대에 걸친 시간을 한 편 안에서 다룹니다. 전투는 시리즈 전통대로 명령을 골라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걸어 다니며 마을 사람과 이야기하고, 다음 목적지를 알아내고, 던전에 들어가 보스를 잡는 기본 흐름은 익숙합니다. 다만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크게 도약하기 때문에, 한 지역을 여러 시기에 다시 방문하게 되고 그때마다 마을이 달라져 있습니다.
몬스터가 동료가 된다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몬스터 동료 시스템입니다. 전투에서 쓰러뜨린 몬스터가 가끔 따라오겠다고 나서고, 승낙하면 그대로 파티원이 됩니다. 슬라임도, 날개 달린 짐승도, 덩치 큰 골렘도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동료가 되는 확률은 몬스터마다 다릅니다. 흔한 녀석은 금방 붙지만 강한 녀석은 몇십 번을 잡아도 안 따라옵니다. 그래서 특정 몬스터를 노리고 같은 자리에서 사냥을 반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원하는 녀석이 마침내 따라오겠다고 할 때의 기분이 이 게임의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동료 몬스터는 각자 배우는 마법과 성장 곡선이 다릅니다. 회복을 담당하는 녀석, 광역 공격 마법을 배우는 녀석, 맷집만 좋은 녀석이 따로 있어서 파티를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전투가 크게 달라집니다. 사람 동료가 적은 편이라 몬스터를 어떻게 굴리느냐가 사실상 육성의 중심입니다.
결혼이라는 선택
이야기 중반에는 결혼 상대를 고르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람과, 여행 중 만난 사람 중에서 정해야 합니다. 이 선택은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들과 이후 함께 싸울 동료, 그리고 태어날 아이의 모습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나온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처음 할 때 한쪽을 고르고, 나중에 다시 해서 다른 쪽을 골라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투와 진행 요령
초반 소년기는 능력치가 낮고 쓸 수 있는 것도 적어 답답할 수 있습니다. 이 구간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무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청년기부터는 몬스터 동료가 붙기 시작하니 파티 구성을 신경 써야 합니다. 회복을 맡을 자원이 부족하면 던전 중간에 무너지기 쉬우니, 회복 마법을 배우는 동료를 하나는 꼭 데리고 다니는 편이 안전합니다.
또 이 게임은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파티원을 여덟까지 데리고 다닐 수 있습니다. 전투에 나가는 건 앞의 세 명이지만, 마차 안 동료도 경험치를 조금씩 받습니다. 새로 얻은 약한 몬스터를 마차에 태워 키우다가 쓸 만해지면 앞으로 빼는 식으로 굴리면 효율이 좋습니다.
보스전에서는 상태 이상을 거는 마법이 의외로 잘 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힘으로만 밀지 말고 보조 마법을 한 번씩 시험해 보면 훨씬 수월해집니다.
시리즈 안에서의 자리
4편이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를 장별로 나눠 보여 줬다면, 5편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째로 따라갑니다. 이 구성 덕분에 시리즈 중에서도 이야기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몬스터를 동료로 삼는 방식도 이후 여러 게임에 영향을 줬습니다. 잡던 적을 데리고 다니며 키운다는 발상이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이야기와 육성 어느 쪽으로 접근해도 오래 붙잡게 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