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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온

초시 미궁 레기온 (Chouji Meikyuu Legion Ver 2 03 Imperfect Graphics) · 1987 · Nichibu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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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 게임에서 폭탄은 대개 화면 전체를 지우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폭탄은 적을 지우지 않습니다. 대신 시간을 멈추고, 적들의 움직임을 되감아 버립니다. 총알이 날아오던 궤적이 거꾸로 돌아가는 화면은 1987년 오락실에서 상당히 낯선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레기온(Chouji Meikyuu Legion)은 니치부츠가 만든 종스크롤 슈팅입니다. 화면이 위로 흐르고 아래쪽의 자기 기체가 올라오는 적을 쏘아 없애는 기본 구조 위에, 시간을 다루는 폭탄과 사람을 구해 화력으로 쓰는 장치가 얹혀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이 게임을 같은 시기 다른 슈팅과 구별해 줍니다.

레기온 슈팅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7)

사람을 태워 강해진다

이 게임의 강화 방식이 독특합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구해내면, 그들이 기체에 달린 포탑에 올라타 함께 적을 쏩니다. 즉 파워업 아이템을 먹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태우는 것이고, 태운 만큼 화력이 늘어납니다. 이름에 붙은 군단이라는 말이 그대로 규칙이 된 셈입니다.

여기에 점수와 관련된 장치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가끔 구조용 함선이 지나가는데, 구해둔 사람들을 여기에 내려주면 보너스를 받습니다. 문제는 사람을 내려주면 화력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점수를 챙길 것인가 화력을 유지할 것인가를 그때그때 정해야 하고, 이 선택이 이 게임의 전략적인 부분입니다.

사람을 태운 상태에서 피격되면 잃게 되므로, 화력이 높을수록 조심스러워집니다. 강해질수록 지킬 것이 많아지는 구조라 긴장이 계속 유지됩니다.

레기온 슈팅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7)

시간을 멈추는 폭탄

폭탄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멈추고 적들의 움직임이 되감깁니다. 화면을 뒤덮은 총알이 발사 지점으로 돌아가는 동안 자기 기체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사실상 위기를 되돌리는 기능입니다. 화면 전체를 지우는 흔한 폭탄과 달리 적 자체는 남아 있어서, 폭탄을 쓴 뒤에 무엇을 할지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 장치는 쓸 자리를 고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총알에 완전히 갇혔을 때 쓰는 것이 기본이지만, 사람을 구하러 위험한 자리로 들어가기 직전에 쓰는 것도 방법입니다. 적이 멈춰 있는 동안 안전하게 회수하고 빠져나오면, 폭탄 하나로 화력 몇 단계를 벌 수 있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첫 번째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앞만 보고 쏘다 보면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이 화면 밖으로 사라집니다. 화력이 약한 상태로 뒤로 갈수록 어려워지니, 초반에 사람을 최대한 챙겨 화력을 올려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폭탄을 아끼는 것입니다. 이 장르에서 흔한 실수인데, 아끼다가 폭탄을 들고 죽는 것이 가장 큰 손해입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쓰는 것이 원칙이고, 특히 사람을 여럿 태운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 번째는 화면 아래에 붙는 것입니다. 종스크롤에서 아래쪽에 붙으면 반응할 시간은 벌지만 위쪽 사람을 구하러 갈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이 게임은 앞으로 나가서 회수해야 하는 게임이라, 조금 위쪽에서 노는 편이 결과적으로 유리합니다.

니치부츠라는 회사

니치부츠는 1970년대부터 오락실 기계를 만들던 오래된 회사입니다. 초기에는 고정 화면 슈팅으로 이름을 알렸고, 1980년대에는 여러 장르를 오갔습니다. 큰 시리즈로 계속 이어진 이름은 적지만, 아이디어가 독특한 작품을 꾸준히 냈다는 평이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축에 듭니다. 시간 되감기와 동료 탑승이라는 두 발상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1987년이라는 시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이런 실험적인 요소는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규칙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고, 국내 오락실까지 널리 퍼지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해보면 화면이 그리 화려하지 않은데도 계속 붙잡게 됩니다. 사람을 몇 명 태우고 있는지, 폭탄을 언제 쓸지, 구조선이 오면 내려줄지를 매 순간 저울질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규칙 몇 개로 이 정도 밀도를 만든 슈팅은 그 시절에도 흔치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