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1
마더 (Mother Japan) · 1989 · Ninte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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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마법 대신 야구방망이와 초능력
1980년대 후반 RPG라고 하면 검을 든 용사가 마왕을 잡으러 가는 이야기가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야구모자를 쓴 소년이고, 무기는 야구방망이이며, 마법 대신 PSI라 부르는 초능력을 씁니다. 무대는 판타지 왕국이 아니라 교외 주택가와 학교와 백화점이 있는 현대 미국입니다.
적으로는 슬라임 대신 성난 개, 불량배, 히피, 걸어 다니는 신호등이 나옵니다. 회복은 여관 대신 집에 돌아가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거나 전화로 아빠와 통화하며 합니다. 이 발상 자체가 당시로서는 대단히 낯설고 신선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마더 1(Mother)은 닌텐도가 패미컴으로 내놓은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카피라이터 이토이 시게사토가 기획과 각본을 맡았고, 소년 닌텐이 이상 현상이 벌어지는 마을을 떠나 세계 곳곳을 돌며 여덟 개의 멜로디를 모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턴제 전투와 레벨 성장, 마을과 필드를 오가는 진행 등 기본 뼈대는 당시 RPG의 문법을 따릅니다. 다만 그 위에 얹힌 소재와 정서가 완전히 다릅니다. 무섭거나 웅장하기보다는 어딘가 쓸쓸하고 다정한 감각이 게임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여덟 개의 멜로디
여정의 목표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여덟 개의 멜로디를 모으는 것입니다. 멜로디는 보물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 특정 장소에서 특정 조건을 갖췄을 때 들려오는 노래 조각입니다. 노래하는 바위, 사막의 선인장, 어느 무덤가 같은 곳에서 하나씩 얻습니다.
이 구성 덕분에 이 게임은 물건을 모으는 대신 이야기를 모으는 느낌으로 진행됩니다. 멜로디마다 그것을 지키던 사람이나 장소의 사연이 붙어 있고, 다 모았을 때 그것들이 하나의 노래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이 시리즈가 왜 오래 사랑받는지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동료와 초능력
혼자 다니는 게임은 아닙니다. 여행 도중 강한 PSI를 쓰는 소녀 애나, 힘이 세고 기계를 다루는 로이드, 그리고 후반에 합류하는 테디가 파티에 들어옵니다. 각자 잘하는 일이 다르고, 합류하는 계기도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PSI는 공격, 회복, 보조로 나뉩니다. 텔레포트로 이미 다녀온 곳으로 이동하고, 라이프업으로 체력을 채우며, PK 계열 공격으로 적을 태우거나 얼립니다. 특히 이동과 회복을 초능력으로 처리한다는 설정이 게임의 현대적 배경과 잘 맞물립니다.
돈은 아버지가 은행 계좌로 부쳐 주고, 현금인출기에서 찾아 씁니다. 짐이 넘치면 택배로 보관을 맡깁니다. 이런 사소한 장치들이 모여 이 게임 특유의 생활감을 만듭니다.
어스바운드로 이어지는 계보
이 작품의 후속작이 슈퍼패미컴으로 나온 마더 2, 즉 북미에서 어스바운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게임입니다. 야구방망이와 PSI, 현대 배경, 다정하면서도 서늘한 정서 같은 이 시리즈의 색은 전부 1편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습니다.
1편은 원래 북미 발매가 준비되다가 무산되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정식으로 해외에 소개되었습니다. 그 사이에도 이 게임은 시리즈 팬들 사이에서 계속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8비트 화면과 단순한 전투 뒤에 담긴 정서 때문에, 지금 해 봐도 유난히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