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 레인저
모피 레인저 (Mopi Ranger) · 1985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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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를 놓는 소방관
화면 가득 뻗은 나무와 건물 사이로, 사다리 하나를 등에 진 사내가 뛰어다닙니다. 위쪽에서는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도와 달라고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 하는 일은 단 하나, 그 아이들이 내려올 길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총도 없고 밟아 죽이는 것도 없이, 그저 길을 놓아 주는 것만으로 한 판이 끝나는 구성이 당시로서는 꽤나 별났습니다.
모피 레인저(Mopi Ranger)는 사다리를 놓아 갇힌 아이들을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액션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화면을 오르내리며 끊어진 발판 사이를 사다리로 이어 주고, 아이들은 그 길을 따라 스스로 걸어 내려옵니다. 모든 아이가 무사히 땅에 닿으면 한 판이 끝나고, 그동안 주인공은 돌아다니는 방해꾼을 피해 다녀야 합니다.
사다리 한 개의 규칙
이 게임의 핵심은 사다리를 아무 데나 무제한으로 놓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사다리에는 제한이 있고, 놓을 자리도 지형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치다 보면 정작 필요한 자리에 놓을 게 남지 않는 상황이 옵니다.
결국 판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어디에 몇 명 있는지, 그 아이들이 내려올 경로가 어디서 끊겨 있는지를 먼저 눈으로 훑어야 합니다. 사다리를 회수해서 다시 쓰는 요령을 익히면 훨씬 여유가 생기는데, 초보와 숙련자의 차이가 여기서 크게 벌어집니다.
쫓아다니는 방해꾼
판 안에는 주인공을 노리고 돌아다니는 적들이 있습니다. 이쪽에는 공격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정면으로 붙는 선택지가 없고, 오로지 동선을 겹치지 않게 관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다리를 놓는 동작에는 짧은 틈이 생기는데, 그 틈에 적이 다가오면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사다리를 놓을 자리를 정하는 판단보다, 그 자리로 가는 길목을 언제 비집고 들어갈지를 재는 쪽이 더 어렵습니다. 적이 반대편으로 멀어진 순간을 노려 재빨리 걸치고 빠지는 리듬을 익히면, 겉보기에 답답하던 판이 갑자기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
코나미 MSX 시절의 얼굴
1980년대 중반 코나미가 MSX로 쏟아 낸 게임들은 하나같이 규칙이 단순하고 화면이 정갈했습니다. 모피 레인저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조작은 이동과 사다리 놓기가 전부이고, 화면 구성도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대신 판이 넘어갈수록 지형이 얄궂게 꼬이면서 난이도를 올립니다.
국내에서는 재믹스를 비롯한 MSX 호환 기기가 퍼져 있던 시절에 여러 사람이 접했습니다. 화려한 대작들 사이에 끼어 크게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한 판이 짧고 규칙이 명확해서 잠깐 손대기에 좋은 게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다시 해 봐도 몇 판만 잡으면 금방 감이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