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 슬램
보디 슬램 (Body Slam 8751 317 0015) · 1986 · Sega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이 게임의 일본판 제목은 사람 이름입니다. 덤프 마츠모토. 1980년대 일본 여자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악명 높았던 악역 선수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바다를 건너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판에서는 등장 선수가 전부 남자로 바뀌었습니다. 같은 게임인데 일본판에서는 여자 선수들이 싸우고, 미국판에서는 당시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를 닮은 남자들이 싸웁니다.
보디 슬램(Body Slam)은 태그팀 프로레슬링 게임입니다. 네 팀 중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 세 팀을 상대로 열 판 승부를 벌입니다.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정해진 판수를 채우는 구조라, 한 경기의 승패보다 전체 성적이 중요합니다.
태그팀이라는 소재
혼자 싸우는 게 아니라 둘이 한 팀으로 붙는다는 점이 이 게임의 성격을 정합니다. 링 밖에 대기하는 동료가 있고 필요할 때 교대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떨어졌을 때 태그를 하느냐 버티느냐가 실제 판단 요소입니다.
프로레슬링 게임이 격투 게임과 다른 점은 잡기에 있습니다. 때리는 것보다 붙잡는 게 중심입니다. 상대에게 붙어서 잡기를 성공시키고, 던지고, 눌러서 카운트를 세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거리를 재는 방식이 격투 게임과 정반대입니다. 격투 게임은 상대와 거리를 유지하는 게 기본이지만, 프로레슬링 게임은 붙어야 뭐라도 됩니다.
여기서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나옵니다. 무작정 붙으면 오히려 상대에게 먼저 잡힙니다. 상대의 동작이 끝나는 틈, 즉 기술이 끝나고 다음 행동을 시작하기 전의 짧은 순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타이밍을 못 잡으면 계속 던져지기만 합니다.
열 판을 버티는 게임
한 판만 이기면 되는 게 아니라 열 판을 치른다는 점이 난이도를 만듭니다. 앞선 경기에서 체력을 아끼는 것도 실력이고, 어떤 상대에게 어떤 방식이 통하는지 기억해 두는 것도 실력입니다.
같은 세 팀을 반복해서 만나기 때문에 패턴을 익힐 기회는 충분합니다. 문제는 뒤로 갈수록 상대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몇 판에서 쉽게 이겼다고 방심하면 후반에 연속으로 무너집니다.
동전을 다시 넣기 전에 알아 두면 좋은 게 있습니다. 이런 오락실 스포츠 게임은 대개 한 번 리듬을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초반에 무리해서 화려한 기술을 노리기보다, 기본 잡기로 확실하게 점수를 쌓아 가는 편이 결과가 좋습니다.
세가가 아니라 다른 곳이 만든 게임
이 게임은 세가 이름으로 나왔지만 실제 개발은 에스코 무역이라는 다른 회사가 맡았습니다. 이 시기 세가는 자사 개발과 외주를 함께 굴리고 있었고, 기판과 유통은 세가가 대고 게임은 다른 곳이 만드는 방식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기판은 세가 시스템 16 계열입니다. 정확히는 그 직전 단계의 기판인데, 시스템 16은 이후 골든 액스와 샤이닝 포스, 에일리언 신드롬 같은 세가의 간판 작품들을 굴린 명기판입니다. 보디 슬램은 그 계보가 자리를 잡기 직전에 나온 물건입니다.
발매 한 달 뒤에는 세가가 직접 마스터 시스템으로 옮겨 프로 레슬링이라는 제목으로 냈습니다. 오락실에서 나온 지 한 달 만에 가정용이 나왔다는 건 상당히 빠른 편입니다.
프로레슬링과 오락실
80년대 중반은 프로레슬링이 텔레비전으로 인기를 끌던 때입니다. 일본에서는 신일본과 전일본, 그리고 여자 프로레슬링이 각각 팬층을 갖고 있었고, 미국에서는 프로레슬링이 전국 방송을 타며 폭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오락실 게임으로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미국판에서 선수 성별을 통째로 바꾼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자 프로레슬링이 유명했지만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건 남자 선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게임을 시장에 맞춰 다시 칠하는 건 이 시절에 흔한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은 김일 선수 시절부터 이어진 익숙한 종목이었습니다. 다만 오락실에서 레슬링 게임이 주력이 된 적은 없습니다. 격투 게임이 등장하기 전이라 사람 대 사람 대결 게임의 재미가 아직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았던 탓도 있습니다.
지금 해 보면 조작이 뻣뻣하고 기술 종류도 많지 않습니다. 대신 붙어서 잡고 던진다는 프로레슬링 게임의 기본 형태가 이 시기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는 확실히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