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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프론티어 2

사가 프론티어 2 (Saga Frontier 2 USA) · 1999 ·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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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곤 전성기에 물감으로 그린 게임

1999년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어느 회사든 폴리곤을 얼마나 잘 굴리는지로 겨루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을도 산길도 인물도 전부 수채 물감이 번진 듯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화면을 멈춰 세워 놓으면 그대로 화집의 한 장처럼 보입니다. 옅게 물빛이 깔린 항구, 눈이 얹힌 산맥, 그림자가 길게 지는 골목이 선 하나하나까지 손으로 그린 것입니다.

기술로 앞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게임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에 나온 3D 게임들이 지금 보면 각진 인형처럼 보이는 것과 달리, 여기 그림은 오늘 꺼내 보아도 그대로입니다. 타이틀 화면이 뜨는 순간에 이미 이 게임이 무엇을 아끼는지가 보입니다.

사가 프론티어 2 RPG 게임 화면 1 - 플레이스테이션 (1999)

어떤 게임인가

사가 프론티어 2(SaGa Frontier 2)는 한 대륙에서 백여 년에 걸쳐 벌어진 일을 짧은 장면으로 잘라 놓고, 연표에서 볼 장면을 골라 가며 따라가는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한 장면은 짧으면 몇 분이면 끝나고, 어떤 장면은 전투 한 번 없이 대화와 이동만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조각을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한 사람의 일생과 한 집안의 대물림이 완성됩니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흐릅니다. 한쪽은 왕가에서 쫓겨난 귀스타브의 일대기이고, 다른 한쪽은 나이츠 가문 사람들이 대를 이어 가며 세상을 위협하는 물건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두 줄기는 오랫동안 따로 흐르다가 같은 시대의 같은 사건 앞에서 겹쳐집니다. 어느 쪽을 먼저 볼지는 플레이어가 정합니다.

사가 프론티어 2 RPG 게임 화면 2 - 플레이스테이션 (1999)

아니마를 갖지 못한 사람

이 세계에서는 사람에게도 물건에도 아니마라는 힘이 깃들어 있고, 술이라 부르는 마법을 쓰려면 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아니마가 강한 자가 곧 귀한 사람인 세상입니다. 귀스타브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니마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루아침에 왕궁 밖으로 밀려납니다.

술을 못 쓰는 사람은 무엇으로 싸우는가. 이 게임이 내놓은 답은 강철입니다. 아니마는 흔한 대신 쇠를 다루는 기술이 귀한 세계에서, 귀스타브는 강철을 손에 넣고 그것으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갑니다. 마법을 못 쓰는 주인공이 세계의 규칙 자체를 비틀어 버리는 구조라, 단순한 약점이 이야기 전체의 축이 됩니다.

싸우다가 떠오르는 기술

전투는 턴을 주고받는 방식입니다. 다만 기술을 상점에서 사 오는 게임이 아닙니다. 무기 기술은 싸우는 도중에 문득 떠오르고, 술은 이미 아는 것들을 이리저리 맞춰 보며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같은 구간을 지나도 사람마다 손에 쥔 기술이 달라집니다.

아군의 행동이 맞물리면 연계가 걸립니다. 한 사람의 공격이 끝나는 자리에 다음 사람의 공격이 이어지면 한 줄로 묶여 위력이 크게 올라가는데, 이 연계를 몇 개까지 잇느냐가 사실상 화력의 전부입니다. 순서와 기술 성질을 맞추는 것이 이 게임의 실력입니다.

체력과 별개로 생명점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크게 얻어맞거나 쓰러지면 이 점수가 깎이고, 바닥나면 그 인물은 그 장면에서 빠집니다. 회복 수단이 넉넉하지 않아 무리한 진행이 그대로 다음 장면의 부담이 됩니다. 싸우는 지형에 따라 술의 위력이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라, 어디서 붙느냐까지 계산에 들어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연표를 순서대로 밟지 않고 눈에 띄는 장면만 골라 뛰어넘으면,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어려운 싸움 앞에 서게 됩니다. 장면마다 쓸 수 있는 인물이 정해져 있어서 한 명만 키워 두는 방식도 통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을 고루 굴려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귀스타브 쪽 이야기에는 개인 전투가 아니라 부대를 움직이는 대규모 전투 장면도 끼어듭니다. 평소 하던 감각으로 덤비면 당황하기 쉬운 대목이라 한 번은 크게 깨지고 배우게 됩니다. 연계를 만들지 못하면 화력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는 점만 몸에 익히면 그 뒤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이유

이 시절 플레이스테이션 소프트는 국내 정식 유통을 거치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언어의 벽도 컸습니다. 대사로 사건을 설명하는 비중이 큰 게임이라 뜻을 모르면 절반은 놓치게 되는데, 그래서 같은 스퀘어 게임이라도 파이널 판타지 쪽에 훨씬 사람이 몰렸습니다.

사가 시리즈는 그렇게 늘 그늘에 있었지만, 규칙을 스스로 파고드는 재미로 두고두고 다시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계열이기도 합니다. 그림과 음악만 두고도 한 번쯤 켜 볼 값어치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