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전 MSX
수호전 (Suikoden) · 1988 · Ko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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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을 8비트 컴퓨터에 담다
중국 고전 수호전은 108명의 호걸이 양산박에 모여 부패한 관리와 맞선다는 이야기입니다. 인물만 백 명이 넘고 사건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 방대한 소설을 8비트 컴퓨터용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시도는 지금 봐도 야심찹니다. 만든 쪽은 이야기를 통째로 옮기는 대신, 호걸을 조작해 무대를 헤쳐 나가는 액션으로 압축하는 길을 골랐습니다.
당시 코나미의 MSX 소프트는 그래픽과 음악 양쪽에서 다른 회사보다 한 단계 위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화면을 채우는 캐릭터와 배경 묘사에서 그 솜씨가 드러납니다. 한자 문화권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무대의 생김새와 인물의 옷차림도 여느 서양풍 게임과는 다른 인상을 줍니다.
무엇보다 소재가 낯익다는 점이 컸습니다. 서양 판타지 이름이 잔뜩 나오는 게임들 사이에서, 아는 이름과 아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임은 그 자체로 손이 한 번 더 갔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수호전(Suikoden)은 양산박에 모인 호걸을 조작해 각지의 무대를 돌파해 나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화면 안의 적을 무기로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구간 끝에서는 그 지역을 지키는 강한 상대를 만납니다. 무작정 달려드는 대신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때리는 타이밍을 재는 쪽이 훨씬 잘 통하는 설계입니다.
싸우는 대상은 관군 병사와 자객, 그리고 각 지역의 우두머리입니다. 소설 속 인물의 이름과 별칭이 그대로 쓰여서,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아는 이름이 튀어나올 때 반가움이 있습니다. 읽지 않았더라도 게임 자체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어차피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다가오는 적을 넘기고 앞으로 가는 것이니까요.
조작과 한 판의 흐름
조작은 방향키로 움직이고 버튼으로 공격하는 단순한 구성입니다. 다만 공격 판정이 나가는 거리와 다시 휘두를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붙었다 빠지는 거리 조절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적에게 딱 붙어 버튼을 연타하면 대부분 손해를 봅니다. 한 대 때리고 반 걸음 물러나는 리듬을 익히는 것이 첫 관문입니다.
한 판은 무대를 나아가며 적을 정리하고, 중간에 얻는 것들을 챙기고, 마지막 상대를 넘는 흐름으로 굴러갑니다. 체력이 정해져 있으니 잡졸 하나하나를 다 잡으려 들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칠 수 있는 적은 지나치고, 마지막 싸움을 위해 체력을 남겨 두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무대마다 지형이 다르다는 점도 흐름에 영향을 줍니다. 좁은 통로에서는 적이 한 줄로 들어오니 오히려 편하고, 넓은 마당에서는 사방이 열려 있어 위험합니다. 지형을 먼저 보고 싸울 자리를 고르는 습관을 들이면 체감 난이도가 크게 내려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많이 죽는 곳은 여러 방향에서 적이 동시에 들어오는 구간입니다. 한쪽만 보고 공격을 반복하다가 뒤에서 맞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벽이나 화면 끝을 등지고 서서 한 방향만 상대하도록 위치를 잡는 것이 기본 요령입니다. 이 하나만 지켜도 초반 무대는 훨씬 수월해집니다.
우두머리 싸움에서도 조급함이 독입니다. 상대는 대체로 일정한 순서로 움직이므로, 처음 한두 번은 맞더라도 그 순서를 외우는 데 쓰는 편이 낫습니다. 패턴을 파악하고 나면 반격할 틈이 어디에 있는지가 보이고, 그때부터는 체력을 거의 잃지 않고 넘길 수 있습니다.
체력을 회복할 수단이 넉넉하지 않다는 점도 미리 알아 두면 좋습니다. 초반에 무리해서 체력을 깎아 놓으면 뒤에서 회복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끌려갑니다. 앞부분은 지루하더라도 안전하게 넘기는 것이 결국 더 빠릅니다.
코나미와 MSX의 시절
1980년대 후반 코나미는 MSX 전용 소프트를 꾸준히 내놓으며 이 기종의 대표 개발사 노릇을 했습니다. 하드웨어의 한계를 잘 아는 회사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계속 시험했고, 그 결과물들이 MSX 사용자에게 오랫동안 기억되었습니다. 같은 기계에서 돌아가는데 코나미 것만 유독 화면이 깔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MSX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처음 만지는 컴퓨터였고, 게임 카트리지는 친구끼리 돌려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해 보면 화면은 소박하지만, 한 무대를 힘겹게 넘겼을 때 오는 성취감은 그때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