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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글러브 볼

슈퍼 글러브 볼 (Super Glove Ball USA) · 1990 · Mat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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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끼고 하는 벽돌깨기

1980년대 말, 손에 끼고 허공에 휘두르면 화면 속 물체가 움직이는 컨트롤러가 있었습니다. 파워 글러브라는 이름의 이 물건은 광고에서 보여 준 것만큼 정확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장갑을 위해 처음부터 설계된 게임이 몇 개 있었고, 이 게임이 그중 하나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게임은 장갑 없이 일반 패드로 해도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갑니다. 오히려 패드 쪽이 훨씬 정확합니다. 그래서 장갑이라는 물건은 사라졌지만 게임은 남았고, 지금 와서 해 보면 주변기기 홍보용이라기에는 아까울 만큼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슈퍼 글러브 볼 액션 게임 화면 1 - 패미컴 (1990)

어떤 게임인가

슈퍼 글러브 볼(Super Glove Ball)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벽돌깨기입니다. 플레이어는 화면 가운데에 떠 있는 장갑을 조종해 방 안을 튕겨 다니는 공을 받아치고, 그 공으로 벽면의 타일을 부숩니다. 아케이드의 블록 깨기 게임을 평면이 아니라 상자 속으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방은 정육면체 형태이고 위아래, 좌우, 정면 다섯 면 모두에 타일이 붙어 있습니다. 좌우 벽에는 각각 스무 장, 위아래에는 서른두 장, 정면 벽에는 마흔 장이 붙어 있어서 부술 것이 사방에 있습니다. 공이 뒤로 빠져나가지 않게 받아 내면서 원하는 면을 노려 부숴야 하니, 평면 벽돌깨기와는 요구되는 감각이 전혀 다릅니다.

슈퍼 글러브 볼 액션 게임 화면 2 - 패미컴 (1990)

방과 방을 잇는 미로

이 게임이 단순한 벽돌깨기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는 구조에 있습니다. 방 하나를 정리하면 끝이 아니라 다음 방으로 이어지고, 그 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습니다. 게임은 세 개의 큰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각 구역이 수많은 방으로 이루어진 미로입니다.

그래서 진행할 때마다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를 고르게 됩니다. 벽을 부수면 그 너머로 통로가 열리고, 어느 벽을 뚫었느냐에 따라 다음에 들어가는 방이 달라집니다. 벽돌깨기를 하면서 동시에 미로를 탐험하는 셈인데, 이런 조합은 같은 시기의 다른 블록 깨기 게임에서 보기 어려운 구성입니다.

방마다 배치와 장애물이 다르고, 안쪽에서 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나옵니다. 단순히 공만 쫓아다니면 곧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 오므로, 어느 면부터 부숴 나갈지 순서를 정하고 움직이는 편이 낫습니다.

조작을 익히는 요령

처음 잡으면 원근감 때문에 공의 위치를 잘못 읽습니다. 공이 멀리 있을 때는 작게 보이고 가까워질수록 커지는데, 이 크기 변화로 거리를 판단하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초반에는 공을 놓치는 대부분의 상황이 실제로는 손이 늦은 것이 아니라 거리를 잘못 본 것입니다.

장갑은 단순히 공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을 잡아서 원하는 방향으로 던지거나 세게 쳐 낼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쓰면 노리고 싶은 면에 공을 정확히 보낼 수 있어서, 남은 타일이 몇 장 안 될 때 특히 유용합니다. 그냥 반사시켜 놓고 운에 맡기는 것과 일부러 던져서 맞히는 것은 정리 속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난이도는 방이 깊어질수록 공의 속도와 방해 요소가 늘면서 올라갑니다. 여러 개의 공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한 번에 다 챙기려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처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만든 곳 이야기

개발을 맡은 곳은 레어입니다. 나중에 슈퍼 패미컴과 닌텐도 64에서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되는 그 회사인데, 이 시기에는 패미컴용 게임을 여럿 만들어 내던 영국의 개발사였습니다. 유통은 파워 글러브를 만든 완구 회사 마텔이 맡았습니다.

주변기기 판매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은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게임은 그 통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1인칭 시야에서 공의 궤적을 표현하고 다섯 면짜리 방을 돌아다니게 만든 것은 8비트 하드웨어에서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 화면 표현을 단순화한 흔적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공에 집중하게 만들어 줍니다.

국내에서는

이 게임은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축에 들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파워 글러브라는 주변기기 자체를 실물로 본 사람이 드물었고, 게임 잡지에서 사진으로만 접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카트리지 자체도 문방구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우연히 접한 사람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벽돌깨기라는 익숙한 뼈대에 1인칭 시점과 미로 탐험을 얹어 놓은 조합이 그 시절 기준으로는 낯설고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시 해 봐도 몇 판만 잡으면 감이 오고, 그 뒤로는 방을 하나 더 넘겨 보고 싶어지는 종류의 게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