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킹
스트리킹 (Streaking SET 1 Bad Colours) · 1980 · Sho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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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남다른 게임
1980년 전후의 오락실 게임 제목은 대개 점잖았습니다. 침략자를 막고, 별을 부수고, 미로에서 점을 먹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이 게임은 대놓고 알몸으로 거리를 질주하는 상황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 서구에서 한동안 유행처럼 번졌던, 공공장소를 벌거벗고 달려 지나가는 장난을 그대로 게임으로 옮긴 셈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눈길을 끌 만한 발상이었지만, 실제 화면은 요즘 사람이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한 사람이 몇 개의 점으로 표현되던 시절이라, 화면 속 주인공은 그저 작게 움직이는 실루엣에 가깝습니다.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하고 켰다가 도트 몇 개를 보고 허탈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스트리킹(Streaking)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의 미로형 액션입니다. 화면에는 건물과 길로 이루어진 구역이 펼쳐져 있고, 플레이어는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합니다. 기본 골격은 같은 시기의 미로 게임들과 같습니다. 좁은 통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쫓아오는 상대를 피하고, 화면에 놓인 것들을 챙기며 한 판을 정리하는 구조입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네 방향 레버로 주인공을 움직이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복잡한 기술이나 공격 수단은 없습니다. 이 시기 게임 대부분이 그랬듯 공격보다 회피가 중심이며, 어디로 가느냐를 고르는 판단이 실력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목숨은 몇 개가 주어지고, 쫓아오는 상대에게 붙잡히면 하나씩 줄어듭니다. 모두 잃으면 그대로 끝입니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나면 설명이랄 것이 거의 없이 곧바로 판이 시작되므로, 첫 판은 대체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다가 잡히기 마련입니다.
한 판의 흐름
처음 한두 판은 길이 넓고 쫓아오는 상대도 느긋해서, 감을 잡을 여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입니다. 미로 게임 특유의 압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갈림길에서 한 박자만 늦어도 양쪽에서 막혀 빠져나갈 구멍이 사라집니다.
이런 초창기 미로 게임을 처음 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화면 구석에 오래 머무는 것입니다. 구석은 안전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도망칠 방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자리입니다. 화면 가운데 쪽에서 여러 갈래의 길을 남겨 두고 움직이는 편이 훨씬 오래 버팁니다.
또 하나는 레버를 미리 꺾어 두는 습관입니다. 갈림길에 도착한 뒤 방향을 바꾸려 하면 늦습니다. 꺾고 싶은 지점에 닿기 조금 전에 레버를 그 방향으로 넣어 두면, 통로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꺾입니다. 이 한 가지만 익혀도 체감 난이도가 눈에 띄게 내려갑니다.
흑백 화면과 색 셀로판
1980년의 저가 기판은 색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흑백 화면 위에 색깔 셀로판지를 붙여 구역마다 다른 색이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하늘 쪽에는 파란 띠, 바닥 쪽에는 초록 띠를 덧대는 식이지요. 지금 이 게임의 화면 색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원래 기판에서 그런 물리적인 눈속임까지 합쳐서 완성되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소리도 마찬가지로 소박합니다. 짧은 전자음 몇 가지가 걸음과 사건을 알려 주는 정도이고, 배경 음악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다시피 합니다. 대신 그 단순한 소리가 쫓기는 긴장을 꽤 잘 전달합니다.
지금 해 볼 만한 이유
이 게임이 명작 목록에 오르는 일은 없습니다. 국내 오락실에 널리 깔린 기판도 아니어서, 한국에서 이걸 기억하는 분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켜 볼 값어치가 있는 이유는, 오락실이라는 매체가 아직 무엇이든 해 볼 수 있던 시절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판이 짧고 규칙이 즉시 이해되니, 부담 없이 몇 번 시도해 보기 좋습니다. 별도의 설치 과정 없이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되므로, 40년 전 오락실의 공기를 확인하는 데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화려함을 기대하기보다, 이런 게임이 실제로 만들어져 돈을 받고 돌아갔다는 사실 자체를 즐기는 쪽으로 접근하시면 훨씬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