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핑
와이핑 (Wiping) · 1982 · Nichibutsu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주인공이 진공청소기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 적을 상대하는 게임은 이 시절에 여럿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흙을 파는 인부거나 두더지 같은 것이 주인공이었는데, 이 게임은 그 자리에 진공청소기를 앉혔습니다. 무대도 지하가 아니라 방 안입니다. 먼지가 쌓인 바닥을 청소기가 밀고 다니면서 길을 내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세균을 잡습니다. 1982년에 나온 게임치고는 발상이 유난히 생활 밀착형입니다.
와이핑(Wiping)은 화면 가득 덮인 먼지를 밀어내며 길을 만드는 미로 액션입니다. 조이스틱으로 상하좌우 네 방향으로 움직이고, 버튼 하나로 비눗방울을 뿌립니다. 먼지를 다 치우면서 세균을 처리하면 한 판이 끝나는 구조입니다.
비누를 찾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규칙 중 재미있는 부분은 무기가 무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먼지 아래에 비누가 숨어 있고, 그 위의 먼지를 치워야 비누가 드러납니다. 비누를 주우면 세균을 하나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작정 돌아다니며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비누가 묻혀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파는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세균을 상대하는 방식도 두 단계입니다. 비눗방울을 뿌려 세균을 잠깐 멈추게 하고, 멈춰 있는 동안 그 위를 지나가며 빨아들입니다. 뿌리기만 해서는 끝나지 않고, 잠깐 멈춘 사이에 다가가야 정리됩니다. 그 짧은 시간을 놓치면 세균이 다시 움직이므로, 뿌린 뒤 곧바로 붙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먼지 아래에는 점수를 주는 물건도 함께 숨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다 모으면 더 큰 보너스가 나타나는 구조라, 살아남는 것만 목표로 하는 사람과 점수를 노리는 사람의 진행 경로가 달라집니다. 점수를 노리면 위험한 구석까지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도망칠 길이 좁아집니다.
파는 순서가 곧 생존 전략입니다
이 유형의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만든 통로의 모양입니다. 먼지를 밀어낸 자리가 곧 길이 되는데, 아무 데나 파고 다니면 길이 사방으로 뚫려서 세균이 들어올 방향도 함께 늘어납니다. 반대로 통로를 한 줄로 길게만 만들면 막다른 곳에 몰릴 위험이 생깁니다.
요령은 순환하는 경로를 먼저 확보하는 것입니다. 화면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두면, 세균이 붙어도 계속 돌면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그 순환로를 축으로 삼아 가지를 내는 식으로 나머지 구역을 정리하면, 몰려도 빠져나갈 방향이 항상 남습니다.
초보자가 가장 많이 죽는 자리는 마지막 한두 구역입니다. 거의 다 치웠다는 생각에 급해져서 남은 먼지 쪽으로 직진하다가, 세균이 통로 양쪽에서 다가오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남은 양이 적을수록 오히려 천천히, 비누가 있는 자리를 확인해 가며 접근해야 합니다.
초기 오락실의 아이디어 경쟁
1982년은 땅을 파는 유형의 게임이 유행하던 해였습니다. 하나가 성공하면 비슷한 규칙 위에 다른 소재를 얹은 게임이 줄줄이 나오던 시기였고, 이 게임도 그런 흐름 위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흙 대신 먼지, 무기 대신 비누라는 식으로 소재를 통째로 바꿔서, 같은 규칙이라도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이 전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니치부츠는 이 시기 여러 개발사의 작품을 받아 유통하던 회사입니다. 자체 개발도 했지만 외부 팀이 만든 것을 자기 이름으로 내보내는 일이 많았고, 그 덕분에 발상이 제각각인 게임이 한 회사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이 게임 역시 외부 개발팀의 손에서 나왔고, 북미에서는 다른 제목을 달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해 보면
국내 오락실에서 널리 돌던 게임은 아닙니다. 1982년이면 국내에 들어오는 기판 자체가 한정적이었고, 땅 파는 게임이라면 대부분 더 유명한 쪽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이름보다 화면을 보고 아, 이런 것도 있었구나 하고 알아보게 되는 부류입니다.
지금은 브라우저에서 바로 켤 수 있어서 확인이 간단합니다. 규칙이 몇 판이면 손에 붙고, 통로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구조라 짧게 반복해서 하기에 잘 맞습니다. 청소기가 방을 밀고 다니는 화면을 보고 있으면, 초창기 오락실이 얼마나 자유롭게 소재를 고르던 곳이었는지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