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리 MSX판
이카리 (Ikari) · 1987 · S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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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의 이카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던 감각부터 떠올릴 겁니다. 몸이 향하는 방향과 총구가 향하는 방향을 따로 두는 회전 레버, 그게 이 게임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용 MSX2에는 그런 레버가 없습니다. 조이스틱 하나와 버튼 두 개가 전부입니다. 이 이식판이 흥미로운 지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없는 장치를 흉내 내는 대신, 캐릭터가 제자리에서 여덟 방향을 한 칸씩 돌아가며 조준을 맞추도록 바꿔 놓았습니다. 위를 보던 병사가 아래를 쏘려면 옆을 거쳐 돌아야 하니, 원작에서 손목 한 번에 끝나던 일이 여기서는 반 박자씩 늦습니다.
이카리(Ikari)는 정글에 떨어진 두 명의 특수부대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지형을 걸어 올라가며 적 진지를 뚫는 종스크롤 밀리터리 액션입니다. 화면은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밀려 올라가고, 플레이어는 그 흐름을 따라가며 총으로 병사를 정리하고 수류탄으로 벙커와 포대를 부숩니다. 총알 한 방이면 죽는 원 히트 사망이라, 화력보다 자리 잡는 습관이 먼저 몸에 배야 하는 게임입니다.
걷는 것보다 서는 자리가 먼저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사격이 아니라 엄폐입니다. 맵 곳곳에 놓인 바위와 나무, 부서진 벽은 장식이 아니라 총알을 막아 주는 방패입니다. 적이 몰려 있는 구간에서는 무작정 앞으로 나가지 말고, 엄폐물 뒤에서 몸만 살짝 내밀어 한둘씩 정리하고 다시 숨는 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앞이 비었다고 뛰어들면 화면 위쪽에서 새로 올라온 적에게 옆구리를 내주기 쉽습니다.
수류탄은 아껴 쓰는 물건이 아니라 제때 쓰는 물건입니다. 총알이 통하지 않는 벙커, 안쪽에 병사를 잔뜩 품은 막사, 좁은 통로를 막고 선 포대는 수류탄이 아니면 답이 없습니다. 반대로 벌판에서 걸어오는 병사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건 낭비입니다. 개수가 넉넉하지 않으니, 무엇을 부숴야 길이 열리는지를 먼저 보고 던지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전차를 타는 구간은 이 게임의 숨통입니다. 길가에 세워진 장갑차에 올라타면 몸이 총알을 몇 대 견디고, 화력도 훨씬 세집니다. 다만 연료가 계속 줄어들고 덩치가 커서 좁은 길에서는 오히려 걸리적거립니다. 넓은 벌판에서 밀어붙이는 데 쓰고, 좁아지기 전에 내리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MSX2판은 무엇이 달라졌나
가정용 이식은 대개 원작을 깎아 내는 방향으로 가는데, 이 판은 깎인 곳과 더해진 곳이 함께 있습니다. 깎인 쪽은 앞서 말한 조작입니다. 회전 레버가 없으니 조준을 돌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화면이 밀리는 속도나 캐릭터가 움직이는 감각도 오락실보다 굼뜹니다. 오락실에서 반사적으로 하던 몸놀림이 그대로 통하지 않아, 처음에는 답답하다는 말이 먼저 나옵니다.
더해진 쪽도 있습니다. 아이템과 적의 종류가 원작보다 늘었고, 지상 탈것 말고 비행 수단을 다루는 구간도 들어갔습니다. 오락실판을 이미 외우다시피 한 사람에게는 이 추가 요소들이 다시 해 볼 이유가 됩니다. 화면 색감도 MSX2의 팔레트를 살려 정글의 초록과 흙빛을 제법 진하게 뽑아냈습니다.
느려진 속도를 단점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락실판이 반사신경으로 밀어붙이는 게임이었다면, 이쪽은 한 걸음 옮기기 전에 다음 엄폐물을 확인하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조준을 돌리는 데 시간이 드니, 위험한 방향을 미리 보고 총구를 돌려 놓는 습관이 생깁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이야기
이카리는 SNK가 오락실에서 처음으로 크게 성공한 작품입니다. 이후 이 회사는 여기서 얻은 것을 밑천 삼아 종스크롤 군인물 계보를 이어 갔고, 훨씬 뒤에 나온 메탈슬러그까지도 그 뿌리를 이 게임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명이 나란히 걸어 올라가며 총을 쏘는 그림, 탈것을 빼앗아 타는 장면, 수류탄으로 시설을 날리는 손맛이 모두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MSX2판은 SNK가 이 기종에 직접 내놓은 드문 사례이기도 합니다. 당시 국내에서 MSX는 오락실에 못 가는 시간에 집에서 오락실 게임을 흉내 내는 기계였습니다. 조이스틱 하나로 회전 레버를 대신해야 했으니 손해 보는 장사였지만, 그래도 집에서 이카리를 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컸습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패는 화면 위쪽만 보고 달리다가 옆이나 뒤에서 나온 적에게 맞는 경우입니다. 이 게임의 적은 위에서만 오지 않습니다. 지나온 자리에서 다시 튀어나오기도 하고, 좌우 덤불에서 걸어 나오기도 합니다. 화면 전체를 한 번씩 훑고 나서 발을 떼는 편이 결국 빠릅니다.
두 번째는 조준 방향을 미리 맞춰 두지 않는 습관입니다. 이 이식판에서는 총구를 돌리는 동안 사실상 무방비입니다. 위험한 쪽으로 총구를 미리 돌려 놓고 이동하는 것과, 맞기 직전에 돌리기 시작하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세 번째는 수류탄과 총알을 다 쓰고 나서 보급을 못 찾는 상황입니다. 길목에 놓인 상자와 쓰러뜨린 적이 남기는 보급품을 지나치지 말고 챙겨야 합니다. 탄이 빈 채로 다음 진지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끝납니다. 둘이 같이 할 때는 한 명이 앞을 맡고 다른 한 명이 보급과 측면을 챙기는 식으로 역할을 나누면 훨씬 오래 버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