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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다운힐

익스트림 다운힐 (Extreme Downhill v1 5) · 1995 · Sammy Indu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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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서 스키 게임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축구도 있고 농구도 있고 야구도 있었지만, 겨울 스포츠는 어쩐지 오락실 기계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익스트림 다운힐은 그 드문 자리를 노린 게임입니다. 1995년이면 3D 폴리곤 레이싱이 오락실의 주인공 자리를 넘겨받기 시작하던 시기인데, 이 게임은 굳이 2D 스프라이트로 눈 덮인 비탈을 그려 내는 길을 택했습니다.

익스트림 다운힐(Extreme Downhill)은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활강 스키 게임입니다. 화면은 선수의 뒤를 따라가는 시점으로, 좌우로 방향을 틀어 코스를 따라가면서 나무와 바위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정해진 구간을 통과합니다. 조작은 레버 좌우와 버튼 하나로, 레버로 회전 방향을 잡고 버튼으로 가속하거나 점프하는 식의 단순한 구성입니다. 타임 어택으로 기록을 다투는 모드와 이야기를 따라가는 모드가 함께 들어 있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선수 넷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익스트림 다운힐 스포츠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95)

속도와 제어 사이의 줄다리기

활강 스키 게임의 핵심은 레이싱 게임과 같습니다. 빨라야 기록이 나오는데, 빠를수록 제어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동차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스키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속도를 줄이려면 진행 방향을 비스듬히 틀어 눈을 긁어야 하고, 그 순간 앞으로 나가는 속도는 그만큼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실력 차이는 감속을 얼마나 적게 하고 코스를 통과하느냐에서 갈립니다. 급한 커브 앞에서 미리 각을 만들어 두면 커브 안에서 크게 틀 필요가 없어 속도를 지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커브에 다 와서 급하게 꺾으면 속도도 잃고 코스 바깥으로 밀려나기도 쉽습니다. 코스를 외우는 것이 곧 기록이 되는 구조입니다.

경사도 변수입니다. 비탈이 급해지는 구간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속도가 붙어서, 평소와 같은 타이밍에 꺾으면 늦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지형의 기울기를 읽고 조작 타이밍을 앞당기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익스트림 다운힐 스포츠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95)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가장 흔한 실수는 장애물을 피하려고 좌우로 크게 흔드는 것입니다. 나무 하나를 피하려고 크게 꺾으면 그 반동으로 반대쪽 나무에 걸리고, 그러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속도를 붙이는 데 시간이 통째로 날아갑니다. 스키 게임의 회피는 작게, 일찍 해야 합니다. 눈앞의 장애물이 아니라 화면 위쪽에 이제 막 나타난 장애물을 보고 진로를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겪는 문제는 체크포인트 시간입니다. 이런 구성의 게임은 구간마다 통과 제한 시간을 두고, 못 맞추면 그 자리에서 판이 끝납니다. 초반 구간에서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만 내려오다 보면 시간이 빠듯해져 후반에 무리를 하게 되고, 무리하다 넘어져 더 늦어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초반의 완만한 구간에서 시간을 벌어 두고 후반의 어려운 구간에서 그 여유를 쓰는 배분이 유리합니다.

넘어졌을 때의 대처도 중요합니다. 일어난 직후에는 속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곧바로 다음 장애물을 만나면 다시 넘어지기 쉽습니다. 일어난 뒤에는 잠깐 장애물이 적은 라인을 골라 속도를 회복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선수를 고르는 재미

넷 중 하나를 고르는 구조는 이 시절 스포츠 게임의 흔한 방식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선택은 최고 속도, 회전 반응, 안정성 같은 요소를 서로 다르게 배분해서, 어떤 선수는 직선 구간에서 강하고 어떤 선수는 굽이가 많은 구간에서 강하게 만들어집니다.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반응이 무딘 대신 잘 넘어지지 않는 쪽이 편하고, 코스를 외운 다음에는 최고 속도가 높은 쪽으로 옮겨 가면서 기록을 줄이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름을 직접 넣을 수 있게 한 것도 오락실 게임다운 장치입니다. 자기 이니셜을 넣은 선수로 기록을 세우고 그 기록이 화면에 남는 구조는, 옆자리 친구와 겨루는 재미를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참고로 이 게임의 기록 입력에는 특정 문자열을 걸러내는 장치가 들어 있어서, 짓궂은 이니셜을 넣으면 다른 글자로 바뀌어 버립니다. 오락실 기록판에 무슨 일이 자주 벌어졌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새미와 1995년의 오락실

새미는 이 시기 아케이드와 파친코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던 회사입니다. 뒤에 세가와 합쳐지면서 이름이 더 널리 알려졌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대작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부지런히 내놓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익스트림 다운힐도 그런 흐름에서 나온 게임으로, 68000 계열 프로세서를 쓴 2D 기판 위에서 스프라이트를 확대·축소해 원근감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활강의 속도감을 표현했습니다.

1995년은 오락실 안에서 2D와 3D가 자리를 바꾸던 해였습니다. 폴리곤으로 만든 레이싱과 격투가 사람을 끌어모으고, 2D 스프라이트 게임은 점점 뒤쪽 줄로 밀려나던 시기입니다. 그런 시점에 나온 2D 스포츠 게임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에 띄기 어려웠고, 이 게임 역시 국내 오락실에서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따로 불린 이름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스키라는 소재가 국내 오락실 손님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점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다시 해 보면, 3D가 모든 것을 가져가기 직전에 2D 기술로 속도감을 만들어 내려 했던 마지막 세대의 시도로서 볼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화면에 밀려 들어오는 눈밭과 나무의 확대 처리는 폴리곤과는 다른 방식의 질감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