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여신전생 2
진 여신전생 2 (Shin Megami Tensei Ii Japan) · 1994 · At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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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도쿄 위에 세워진 도시
전작에서 핵과 대홍수로 무너진 세계, 그 폐허 위에 사람들이 다시 세운 인공 도시가 이번 무대입니다. 이름은 티페레트, 카발라의 생명나무에서 따온 구획들로 나뉜 계층 도시입니다. 위층에는 선택받은 자들이 살고, 아래층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삽니다. 주인공은 그 아래층에서 기억 없이 검투사로 살아가는 청년입니다.
이 도입부부터 이 시리즈가 무엇을 하려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마왕을 물리치고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질서와 혼돈 중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는 방식이 대사 선택 하나하나에 스며 있어서, 무심코 고른 대답이 나중에 결말을 바꿔 놓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진 여신전생 2(Shin Megami Tensei II)는 1인칭 시점으로 던전을 걸어 다니며 싸우는 RPG입니다. 화면 아래에 자동으로 그려지는 지도를 보며 미로를 헤매고, 몇 걸음마다 적과 마주칩니다.
이 시리즈를 다른 RPG와 완전히 갈라놓는 건 악마와의 대화입니다. 전투 중에 싸우는 대신 말을 걸 수 있는데, 상대의 성격에 맞춰 응답하면 동료가 되겠다고 합니다.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아이템을 달라고 하기도 하며, 답이 마음에 안 들면 화를 내고 도망가거나 더 세게 덤빕니다. 악마마다 성향이 정해져 있어서, 어떤 상대에게는 진지하게 답해야 하고 어떤 상대에게는 농담으로 받아야 합니다.
모은 악마들은 합체시킬 수 있습니다. 둘을 합쳐 더 강한 악마를 만드는데, 조합에 따라 결과가 정해져 있어 원하는 악마를 얻으려면 계보를 따져 봐야 합니다. 이 합체 시스템이 이 시리즈를 오래 붙잡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로우와 카오스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축은 질서를 대표하는 메시아교 세력과 혼돈을 대표하는 가이아교 세력의 대립입니다. 어느 쪽도 명백히 옳지 않습니다. 질서 쪽은 평화를 주겠다며 인간의 자유를 지웁니다. 혼돈 쪽은 자유를 주겠다며 약자가 짓밟히는 세상을 만듭니다.
게임은 곳곳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그 선택이 누적되어 주인공의 성향을 정합니다. 성향에 따라 동료로 삼을 수 있는 악마의 종류가 달라지고, 중반 이후 이야기가 갈라지며, 마지막에 도달하는 결말이 바뀝니다.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는 중립 노선도 있는데 이쪽이 가장 까다롭습니다.
한 번 깨고 나면 다른 쪽 결말이 궁금해서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같은 무대인데 만나는 인물의 태도와 도시의 모습이 달라지는 걸 보는 재미가 큽니다.
처음 하는 분께
초반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주인공 혼자로는 금방 쓰러지므로, 최대한 빨리 악마를 동료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화에 실패해도 손해가 크지 않으니 만나는 악마마다 일단 말을 걸어 보는 게 좋습니다.
속성 상성이 승패를 크게 좌우합니다. 불, 얼음, 전기, 바람 같은 계열이 있고 적마다 약점이 다릅니다. 약점을 찌르면 한 번에 정리되지만, 반대로 무효화되는 속성을 쓰면 시간만 낭비합니다. 파티에 속성이 겹치지 않게 악마를 구성해 두는 게 기본입니다.
지도를 꼼꼼히 보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던전이 넓고 갈림길이 많아 그냥 걸으면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시리즈 안에서의 위치
1편이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렸다면, 2편은 무너진 뒤에 사람들이 무엇을 세웠는지를 그립니다. 시스템 면에서도 크게 다듬어져서, 자동 지도가 좋아지고 합체 규칙이 정리됐으며 이동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어두운 분위기와 종교적 상징을 정면으로 다루는 태도 때문에 국내에서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이 시리즈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2편을 최고작으로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의 밀도와 선택의 무게가 이후 작품들의 기준을 세웠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