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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 엑설런트

캐슬 엑설런트 (Castle Excellent) · 1986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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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서면 색이 보입니다. 노란 문, 파란 문, 빨간 문. 손에 든 열쇠와 색이 맞아야만 열립니다. 그리고 그 열쇠는 성 어딘가 다른 방에 놓여 있고, 그 방에 가려면 또 다른 문을 지나야 합니다. 이 게임의 100개 방은 그런 식으로 얽혀 있습니다. 지도를 그리지 않고 덤비면 반나절이 지나도 제자리입니다.

캐슬 엑설런트(Castle Excellent)는 글로켄 성에 갇힌 마르가리타 공주를 구하러 들어간 주인공 라파엘을 조작해, 방과 방을 오가며 열쇠를 모으고 길을 여는 액션 퍼즐 게임입니다. 화면 하나가 방 하나이고, 방 끝으로 걸어 나가면 이어진 옆방으로 넘어갑니다. 전작 더 캐슬의 뒤를 잇는 작품으로, 방 수와 짜임새를 크게 늘린 후속작입니다.

캐슬 엑설런트 어드벤처 게임 화면 1 - MSX (1986)

방을 푸는 방식

각 방은 발판과 사다리, 그리고 밀 수 있는 물체로 이루어진 작은 퍼즐입니다. 벽돌 블록이나 통, 촛대 같은 것을 옆으로 밀어 높이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서서 손이 닿지 않던 곳으로 넘어갑니다. 어떤 방에는 블록으로 조작하는 승강기 장치가 있어, 무엇을 어디에 두느냐로 오르내리는 길이 결정됩니다.

조작은 좌우 이동과 점프뿐입니다. 그런데 이 점프의 사거리와 높이가 정확히 정해져 있어서, 한 칸 차이로 닿고 안 닿고가 갈립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대부분은 손기술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어디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뛸지를 미리 정해 놓고 실행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실수입니다. 블록을 잘못된 자리로 밀어 버리면 그 방을 통과할 수 없게 되고, 이미 지나온 길로 돌아가는 것도 막히면 판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익숙한 사람은 블록에 손을 대기 전에 방 전체를 한참 들여다봅니다.

캐슬 엑설런트 어드벤처 게임 화면 2 - MSX (1986)

열쇠와 문

열쇠는 색깔별로 값어치가 다릅니다. 노란 열쇠가 가장 흔하고, 파란 것이 그다음이며, 빨간 열쇠는 귀합니다. 문을 열면 열쇠 하나가 소모되므로, 아무 문이나 열고 다니면 정작 필요한 곳에서 열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질적인 난관은 자원 관리입니다. 지금 이 문을 여는 것이 진행에 꼭 필요한지, 아니면 나중에 다른 길로 갈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대개 초반에 눈에 보이는 문을 다 열고 다니다 중반에 막힙니다.

성 안에는 적도 돌아다닙니다. 대체로 정해진 궤도를 오가는 단순한 움직임이지만, 좁은 발판 위에서 점프 타이밍을 재는 중에 부딪히면 그대로 한 대를 잃습니다. 적을 없앨 수단이 마땅치 않으므로,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메트로배니아의 조상

지금은 흔한 형식이 되었지만, 1986년에 넓은 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얻은 것으로 막힌 길을 여는 구조는 아직 이름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게임과 그 전작은 그 형식의 이른 사례로 자주 꼽힙니다. 다만 요즘 게임처럼 지도를 자동으로 그려 주지 않고, 어디가 열렸는지 표시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 몫은 전부 플레이어의 종이와 연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제대로 즐기려면 지도를 직접 그리는 편이 좋습니다. 방 번호와 문 색, 열쇠 위치를 적어 두면 갑자기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종이가 채워지는 감각이 이 게임의 진짜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만든 곳과 다른 판본

만든 곳은 아스키입니다. MSX 규격을 함께 만든 회사이자 컴퓨터 잡지를 내던 곳으로, 소프트웨어도 직접 냈습니다. 같은 제목이 패미컴으로도 나왔는데, 그쪽은 방 하나가 좌우로 스크롤되는 넓은 구조로 바뀌어 있어 퍼즐이 같은 듯 다릅니다. MSX판은 방 하나가 화면 하나에 딱 들어와, 방 전체를 한눈에 보며 궁리하는 맛이 더 뚜렷합니다.

한국에서는 MSX가 학원과 가정에 꽤 퍼져 있어서 이런 퍼즐 게임이 오래 붙잡히기 좋았습니다. 액션 실력이 없어도 머리를 쓰면 진도가 나가고, 진도가 나간 만큼 저장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고통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노트에 성의 지도를 그려 놓고 친구와 돌려 보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해 보면

빠른 반응을 요구하지 않으니 지금 잡아도 낡았다는 느낌이 덜합니다. 대신 친절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장치가 하나도 없고, 막히면 스스로 방을 다시 훑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친절을 감수할 마음이 있다면, 방 하나를 푸는 순간의 쾌감은 지금 나온 어떤 퍼즐 게임에도 밀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