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 히터
클러치 히터 (Clutch Hitter SET 2 Us fd1094 317 0176) · 1991 · S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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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야구 게임의 승부는 대부분 한 장면에서 갈립니다.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는 그 순간입니다. 수비를 아무리 잘해도, 주루를 아무리 영리하게 해도 결국 방망이가 공을 맞추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목에 클러치라는 말이 들어간 이 게임은 바로 그 결정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춥니다.
클러치 히터(Clutch Hitter)는 세가가 오락실용으로 낸 야구 게임입니다. 혼자 컴퓨터를 상대할 수도 있고, 둘이서 마주 앉아 경기할 수도 있습니다. 공격할 때는 타자를 조작해 공을 노리고, 수비할 때는 투수를 잡아 코스와 구질을 정해 던집니다.
투수와 타자의 수 싸움
공격 쪽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참는 것입니다. 오는 공마다 방망이를 내면 나쁜 공에 헛스윙만 하다 끝납니다.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골라내는 눈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맞추는 기술입니다.
수비 쪽에서는 반대입니다. 좋은 공만 던지면 계속 얻어맞습니다. 존 바깥으로 흘러 나가는 공을 섞어 타자가 손을 내게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변화구는 궤적이 휘니, 처음 보는 사람은 어디로 갈지 예측하지 못하고 방망이를 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둘이 할 때 훨씬 재미있습니다. 상대가 어떤 공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걸 피해서 던지고, 그러면 상대도 그걸 눈치채고 기다립니다. 이 주고받기가 몇 이닝 이어지면 야구 중계에서 보던 수 싸움 비슷한 것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타구가 나간 뒤
공이 맞아 나가면 수비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는 야수를 움직여 공을 잡고 베이스로 던져야 합니다. 초보자가 가장 헤매는 부분입니다. 어느 야수를 조작하고 있는지, 어느 베이스로 던져야 하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령은 무조건 가장 앞선 주자를 잡으려 들지 않는 것입니다. 무리하게 3루로 던졌다가 실패하면 주자가 더 나갑니다. 확실하게 아웃을 하나 잡을 수 있는 쪽으로 던지는 편이 대개 이득입니다.
주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타를 쳤다고 무조건 한 베이스 더 노리면 잡힙니다. 외야수가 공을 잡는 위치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이 감각은 몇 판 해 봐야 생깁니다.
오락실 야구 게임이라는 형식
야구는 한 경기가 깁니다. 그런데 오락실은 짧게 여러 판 돌아야 하는 곳입니다. 이 모순을 푸는 게 오락실 야구 게임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대개는 이닝 수를 줄이고, 진행을 빠르게 하고, 필요 없는 절차를 잘라내는 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이 게임도 그렇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실제 야구의 모든 규칙을 재현하기보다 치고 잡는 재미를 앞에 놓았습니다. 그래서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몇 이닝이면 흐름을 이해합니다.
둘이 앉아 하는 대전이 이 게임의 본령입니다. 오락실에서 야구 게임이 인기 있었던 건 대부분 이 이유였습니다. 서로 아는 사이끼리 붙으면 한 타석 한 타석이 진지해지고, 동전이 계속 들어갔습니다.
세가 기판의 사정
이 시기 세가는 기판 복제를 막기 위해 프로그램을 암호화한 상태로 넣고, 전용 칩만이 그것을 풀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칩이 배터리에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배터리가 다하면 정보가 날아가고 기판은 그대로 벽돌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 세가 기판들 중에는 오랫동안 돌려 볼 수 없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드웨어는 멀쩡한데 암호를 풀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게임들이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은 그 암호 체계를 되살려 낸 오랜 노력의 결과입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야구 게임 자체가 꾸준히 인기 있는 종목이었습니다. 프로야구가 자리를 잡으면서 오락실에도 야구 기판이 여럿 들어왔고, 둘이 앉아 겨루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이 게임이 그중 대표작이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투수와 타자의 수 싸움에 초점을 맞춘 구성은 지금 잡아 봐도 성격이 분명하게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