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빈
투빈 (Toobin REV 3) · 1988 · Atari Games
게임 화면 하단에서 —키 변경 Controls Settings·저장·불러오기 Save State / Load State
레이싱 게임에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아닌 고무 튜브를 태운 게임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튜브에 앉아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고, 손에는 노 대신 팔과 던질 깡통이 있습니다. 액셀도 브레이크도 없이 물살에 밀려가는 이 게으른 이동 방식이 그대로 게임의 규칙이 되는데, 덕분에 다른 어떤 레이싱과도 닮지 않은 조작감이 나옵니다.
투빈(Toobin')은 강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며 끝까지 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화면은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세로 시점이고, 튜브는 물살에 따라 저절로 내려갑니다. 조작에 레버가 아예 없습니다. 버튼 네 개가 왼손 앞젓기, 왼손 뒷젓기, 오른손 앞젓기, 오른손 뒷젓기를 각각 맡고, 다섯 번째 버튼이 깡통 던지기입니다. 한쪽 손만 저으면 그쪽으로 방향이 틀어지고 양손을 함께 저으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실제 노 젓기를 그대로 손가락에 옮긴 조작이라, 처음에는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아 계속 부딪힙니다.
한 강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강마다 문 모양의 깃발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사이를 통과하면 점수가 붙고, 놓치면 그냥 지나갑니다. 통과 자체가 필수는 아니지만 점수를 노린다면 깃발을 따라 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장애물과 부딪힐 위험이 커집니다. 안전하게 가운데로만 흘러갈 것인가, 점수를 위해 가장자리로 붙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 매 순간 생깁니다.
강에는 바위, 통나무, 그물, 물살이 갈라지는 지점 같은 것들이 계속 나옵니다. 여기에 부딪히면 튜브에 바람이 빠집니다. 바람이 다 빠지면 잔기를 잃습니다. 즉 이 게임의 체력은 튜브의 공기이고, 부딪힌 횟수가 곧 남은 목숨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공기 아이템을 주우면 다시 부풀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시간입니다. 강마다 제한 시간이 있고, 강물이 밀어주는 속도만으로는 대개 모자랍니다. 그래서 노를 계속 저어 속도를 붙여야 하는데, 빨리 갈수록 장애물을 피할 여유가 줄어듭니다. 안전과 속도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이 긴장이 투빈의 재미입니다.
던지는 깡통과 강가의 방해꾼
강가에서는 사냥꾼과 원시인 차림의 사람들이 물건을 던지고, 강 안에서는 악어가 다가옵니다. 게다가 한자리에서 꾸물거리면 악어 한 마리가 뒤에서 쫓아붙기 시작해 억지로 속도를 내게 만듭니다. 이때 쓰는 것이 손에 든 깡통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던져 방해꾼을 잠깐 물리칠 수 있습니다. 깡통은 무한하지 않고 강 위에 떠 있는 것을 주워 채워야 하므로, 아무 데나 던지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 빈손이 됩니다.
강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도 자주 나옵니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장애물 배치와 점수 기회가 달라지는데, 좁고 험한 쪽이 대체로 점수가 높습니다. 처음에는 넓은 쪽을 골라 길을 익히고, 익숙해진 뒤에 험한 쪽으로 들어가 보는 순서를 권합니다. 강 위에는 이름의 철자를 이루는 글자들이 숨어 있어, 이것들을 모으는 것도 점수를 크게 올리는 방법입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지점
가장 큰 벽은 조작입니다. 좌우 손을 버튼으로 따로 젓는 방식이 직관적이지 않아, 방향을 틀려다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일이 흔합니다. 요령은 한쪽을 연타하지 말고 짧게 툭툭 끊어 누르는 것입니다. 한쪽만 오래 저으면 회전이 과해집니다.
두 번째는 관성입니다. 물 위라서 멈추고 싶어도 즉시 멈추지 않습니다. 장애물을 본 다음에 피하려 하면 이미 늦습니다. 화면 위쪽 멀리를 미리 보고 두세 박자 앞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욕심입니다. 깃발과 점수 아이템을 다 챙기려 들면 필연적으로 벽에 붙게 되고, 벽 근처에 장애물이 몰려 있습니다. 시간이 빠듯한 구간에서는 점수를 포기하고 통과를 우선하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강의 이름들과 아타리의 별난 기획
등장하는 강에는 콜로라도, 나일, 스틱스, 화성의 운하, 쥐라기 같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실재하는 강과 신화 속 강과 상상 속 지형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는 이 목록이 이 게임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아타리 게임즈는 이 시기에 알려진 장르를 답습하지 않는 기획을 여럿 내놓고 있었습니다. 투빈도 그중 하나로, 레이싱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실제 감각은 강물 위의 장애물 회피 게임에 가깝습니다. 화면 곳곳에 유머가 깔려 있고, 배경의 사람들 반응이나 소소한 연출이 진지한 경주 게임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만듭니다.
한국 오락실에서는 흔한 기판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아니라 튜브를 타고 강을 내려가는 그림이 눈에 띄어 한 번쯤 앉아 보게 되는 종류였고, 조작이 낯설어 첫 판에서 어리둥절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노 젓는 감각을 잡고 나면 다른 레이싱에는 없는 물 위의 느낌이 손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