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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저 오브 더 캐리비안

트레저 오브 더 캐리비안 (Treasure of the Caribbean) · 2011 ·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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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난 뒤에 나온 기판

오락실 기판이라고 하면 대개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이 물건은 2011년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미 오락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예전 같지 않던 시절, 게임기 시장의 중심이 가정용 기기와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간 뒤에 굳이 옛날 방식의 기판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만든 쪽이 그 기판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상업적으로 수천 대를 돌려 회수할 셈이었다면 애초에 이 형태를 고르지 않았을 겁니다. 옛 하드웨어의 제약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시절 화면을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런 물건을 만들어 냅니다.

트레저 오브 더 캐리비안 액션 게임 화면 1 - 오락실 (2011)

카리브해의 보물을 찾아 나섭니다

트레저 오브 더 캐리비안(Treasure of the Caribbean)은 제목 그대로 카리브해를 무대로 보물을 찾아다니는 게임입니다. 해적과 숨겨진 재물이라는 소재는 오락실에서 오래 쓰인 것이라 처음 보는 사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감을 잡습니다. 화면 안을 돌아다니며 목표물을 모으고, 앞을 막는 것들을 피하거나 처리하면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흐름입니다.

조작은 옛 기판의 관례를 따릅니다. 레버로 이동하고 버튼으로 행동을 냅니다. 요즘 게임처럼 튜토리얼이 친절하게 손을 잡아 주지 않으니, 처음 몇 판은 버튼을 하나씩 눌러 보며 무엇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시간으로 쓰게 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옛 오락실에서 새 기계를 만났을 때 하던 것과 똑같습니다.

제약이 만들어 내는 맛

옛 기판 위에서 만든 게임은 쓸 수 있는 색과 화면에 동시에 띄울 수 있는 물체의 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한계는 불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성이기도 합니다. 색을 마음대로 못 쓰니 적은 색으로 바다와 모래와 나무를 구분해야 하고, 그 결과 나오는 화면은 요즘 그림과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줍니다.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녹음된 음악을 그냥 틀 수 없으니 칩이 낼 수 있는 소리를 조합해 곡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배경음은 볼륨이 크지 않아도 귀에 오래 남습니다. 해적을 소재로 한 경쾌한 가락이 반복되는 걸 듣고 있으면 게임을 끄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돌아갑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막히는 곳

이런 부류의 게임에서 초보가 가장 많이 죽는 지점은 욕심을 낼 때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보물 하나를 더 줍겠다고 안전한 위치에서 벗어나는 순간 뒤에서 뭔가가 튀어나옵니다. 처음 몇 판은 점수를 포기하고 화면 구조부터 익히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다음으로 흔한 실수는 적의 움직임을 눈으로만 쫓는 것입니다. 옛 기판 게임의 적은 대부분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입니다. 어디서 나와서 어느 쪽으로 도는지 한 번 파악해 두면 다음부터는 눈이 아니라 기억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화면을 보고 반응하는 게 아니라 미리 그 자리를 비워 두는 식입니다.

남은 목숨 관리도 중요합니다. 한 판을 오래 끌수록 나오는 것이 늘어나니, 초반 구간을 안전하게 통과해 목숨을 아껴 두는 게 후반을 버티는 밑천이 됩니다.

알려지지 않은 물건을 만나는 즐거움

이 게임은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닙니다. 국내 오락실에서 보신 분도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이런 물건을 켜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게임은 이미 누가 다 설명해 놓았지만, 이런 건 직접 해 보기 전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판이 짧으니 부담 없이 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 잘 만들었으면 잘 만든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남는 게 있습니다. 옛 기판을 좋아하는 사람이 시간을 들여 만든 물건에는 대개 어딘가 한 군데쯤 공들인 흔적이 보입니다. 그걸 찾아내는 게 이런 게임을 하는 재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