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사너두
팍사너두 (Faxanadu Europe) · 1987 · Hudson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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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안에 세워진 세계
이 게임의 무대는 거대한 세계수의 내부입니다. 나무 안에 마을이 있고, 통로가 있고, 광산이 있고, 탑이 있습니다. 엘프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었는데 물이 마르고 괴물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온 주인공이 마주하는 첫 마을은 활기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짧고 대체로 도움이 안 되며, 배경 음악은 처량합니다. 8비트 게임 중에서 이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쓸쓸한 정서를 유지하는 작품은 흔하지 않고, 그 분위기 때문에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팍사너두(Faxanadu)는 옆에서 보는 화면으로 진행하는 액션 RPG입니다. 일본 팔콤의 자낙두 계열 작품에서 갈라져 나온 작품으로, 제목도 패미컴과 자낙두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주인공은 검을 들고 좌우로 이동하며 몬스터와 싸웁니다.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 대신 금화가 나오고, 이 금화로 마을에서 장비를 사거나 계급을 올립니다. 계급이 오르면 최대 체력과 마법력이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돈이 곧 성장이다
일반적인 RPG처럼 싸우기만 해서는 강해지지 않습니다. 몬스터를 잡아 모은 금화를 들고 길드에 가서 계급을 올려야 실제 능력치가 오릅니다.
그런데 그 금화로 장비도 사야 합니다. 더 좋은 검, 더 튼튼한 갑옷, 그리고 진행에 필요한 열쇠와 아이템까지 전부 돈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는 항상 무엇을 먼저 살지 고민하게 됩니다. 갑옷을 먼저 사서 버티기를 늘릴지, 검을 먼저 사서 사냥 속도를 올릴지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달라집니다.
죽으면 소지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일단 마을에 들러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왕복이 조금 번거롭지만,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을 만들어 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열쇠와 마법
세계수 곳곳에는 잠긴 문이 있습니다. 열쇠는 여러 종류이고 각각 다른 문에 쓰이며, 한 번 쓰면 사라집니다. 어떤 열쇠가 어느 문에 맞는지 기억해 두지 않으면 되돌아가느라 시간을 크게 낭비합니다.
마법은 마법력을 소모해 쓰는 원거리 공격입니다. 검이 닿지 않는 위치의 적을 처리하거나, 특정 장애물을 없앨 때 필요합니다. 후반 마법 중에는 공격력이 아주 높은 것이 있어서, 어려운 구간을 넘기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망토와 날개 같은 장비도 있습니다. 착용하면 특정 지형에서 받는 피해가 줄거나 이동이 편해지는데, 필요한 구간에서 바꿔 입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길을 잃는 게임
이 게임의 가장 큰 난관은 전투가 아니라 길 찾기입니다. 지도가 없고 안내도 친절하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흘리는 말 한마디가 유일한 단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대사가 나중에 결정적인 정보였음을 깨닫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천천히, 대화를 다 읽으며 진행하는 편이 잘 맞습니다.
분위기와 음악이 그 느린 진행을 견디게 해 줍니다. 무너진 세계수 안을 혼자 걸어 다니는 감각이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고, 지금 다시 해도 그 인상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