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앤 팔
팩 앤 팔 (Pac PAL) · 1983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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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먹지 않는 팩맨
팩맨이라고 하면 미로에 깔린 점을 전부 먹어 치우는 게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점이 없습니다. 대신 미로 곳곳에 열쇠와 과일이 놓여 있고, 열쇠를 챙겨 문을 열어 가며 과일을 모두 회수해야 판이 끝납니다. 팩맨 간판을 달고 있는데 하는 일이 전혀 다른, 시리즈에서도 손꼽히는 이색작입니다.
게다가 팩맨 혼자가 아닙니다. 미로 안을 함께 돌아다니는 초록색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가 앞장서서 유령을 잠시 멈춰 세워 줍니다. 이 조력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판을 푸는 열쇠가 됩니다.
어떤 게임인가
팩 앤 팔(Pac-Man & Pal)은 잠긴 문으로 나뉜 미로 안에서 열쇠를 주워 문을 열고, 갇혀 있던 과일과 아이템을 모두 회수하는 미로 액션 게임입니다. 유령에게 닿으면 목숨이 하나 줄어드는 기본 규칙은 그대로지만, 목표가 점 먹기에서 물건 회수로 바뀌면서 판을 도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조작은 네 방향 이동뿐입니다. 다만 이 게임에서는 어디로 가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문이 여러 개고 열쇠는 하나씩만 들 수 있어서, 어느 문을 먼저 열어야 뒤가 편해지는지를 생각하며 움직여야 합니다. 순서를 잘못 잡으면 스스로 막다른 구역에 갇히게 됩니다.
열쇠와 문, 그리고 순서
미로는 여러 방으로 나뉘어 있고 방과 방 사이가 문으로 막혀 있습니다. 열쇠를 주워 문 앞으로 가면 문이 열리는데, 열린 문은 다시 닫히지 않으므로 통로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통로가 늘어나면 도망칠 길도 늘지만, 동시에 유령이 다가올 길도 늘어납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무작정 모든 문을 여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과일이 몰려 있는 구역으로 가는 최단 경로만 열고, 유령이 몰려 있는 쪽 문은 나중에 여는 편이 안전합니다. 판이 진행될수록 이 판단이 어려워지고, 그것이 곧 난이도로 이어집니다.
조력자와 파워 아이템
함께 다니는 친구는 유령과 부딪히면 유령을 잠깐 얼려 놓습니다. 이 틈에 좁은 통로를 통과하거나 과일을 챙길 수 있어서, 위험한 구역에 들어가기 전에 친구를 먼저 그쪽으로 보내는 식으로 쓰게 됩니다. 다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어서, 친구의 움직임을 읽고 그에 맞춰 내 경로를 짜야 합니다.
파워 아이템도 있습니다. 먹으면 잠시 동안 유령을 쫓을 수 있게 되고, 이 시간에 여러 마리를 연달아 잡으면 점수가 크게 붙습니다. 다만 원작처럼 미로 네 귀퉁이에 상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등장하므로, 위급할 때 쓰려고 아껴 두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시리즈 안에서의 자리
이 게임은 팩맨의 인기가 정점을 지난 시기에 나왔습니다. 같은 규칙을 반복하는 대신 미로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 다른 재미를 만들려는 시도였고, 그래서 팩맨 시리즈를 쭉 해 온 사람에게는 오히려 새롭게 느껴집니다. 미로 게임인데 계획을 세우는 퍼즐에 가까운 감각이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에서는 원조 팩맨만큼 널리 깔리지 않아 아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팩맨의 조작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들어가면 규칙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고, 몇 판만 돌려 보면 문 여는 순서를 궁리하는 재미에 금세 빠지게 됩니다.
처음 하실 때는 욕심내지 말고 가까운 문부터 하나씩 열면서 미로 전체 모양을 눈에 익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형을 알면 유령에게 쫓길 때 어디로 돌아 나가야 하는지가 보이고, 그때부터 이 게임이 훨씬 편해집니다.
기억에 남는 순간
이 게임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문 하나를 열자마자 그 안에 과일이 잔뜩 놓여 있고, 유령은 아직 반대편에 있을 때입니다. 한 바퀴 돌아 전부 챙기고 나오면 남은 판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반대로 가장 아까운 순간은 마지막 과일 하나를 남겨 놓고 유령 두 마리 사이에 끼는 때입니다.
그래서 익숙해질수록 판을 도는 순서가 정리됩니다. 위험한 구역은 파워 아이템이 있을 때 몰아서 처리하고, 안전한 구역은 나중으로 미룹니다. 미로 게임인데도 매 판마다 계획을 다시 세우게 되는 것이 이 게임의 성격입니다.
화면은 단순하지만 팩맨 특유의 동글동글한 그림과 경쾌한 효과음은 그대로입니다.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 과일을 챙길 때 나는 소리가 하나씩 쌓이면서 판이 정리되어 가는 느낌을 주는데, 이 감각 때문에 짧게 몇 판씩 계속 붙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