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프리즈 (Freeze) · 1984 · Cinematron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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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게임인데 손에 쥔 게 화염방사기와 제트팩뿐입니다. 그런데 둘 다 쓰면 줄어듭니다. 불을 뿜을수록 연료가 빠지고, 날수록 제트팩이 바닥납니다. 그리고 이걸 채우는 방법은 미로 곳곳에 흩어진 보석을 줍는 것뿐입니다. 즉 이 게임은 액션 게임의 탈을 쓴 자원 관리 게임입니다.
프리즈(Freeze)는 얼어붙은 지하에 갇힌 사내가 밖으로 나가는 액션 게임입니다. 옆에서 본 화면으로 진행되며,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헤치고 위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주인공 이름은 만프레드입니다. 만든 사람이 좋아하던 밴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쓰면 줄어드는 두 개의 게이지
이 게임의 모든 판단은 두 게이지에서 나옵니다. 화염방사기와 제트팩입니다.
화염방사기는 앞을 막는 것을 처리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계속 뿜으면 금방 바닥납니다. 그래서 정말 필요할 때만,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뿜어야 합니다. 초보는 위험해 보이면 일단 불을 뿜는데, 그러다 정작 막다른 길에서 연료가 없는 상황을 만납니다.
제트팩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아서 넘으면 편한 구간이 많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날아가면 그만큼 낭비입니다. 지형을 보고 여기는 걸어야 할 곳인지 날아야 할 곳인지 판단하는 게 이 게임의 기술입니다.
보석은 이 둘을 채워 줍니다. 그러니 보석은 점수가 아니라 생존 자원입니다. 눈에 보이는 보석을 그냥 지나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합니다. 다만 보석을 주우러 가는 데도 자원이 드니, 저 보석을 주우러 가는 게 이득인지 손해인지를 계산해야 합니다. 이 계산이 이 게임의 재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처음 하는 사람이 죽는 방식
가장 흔한 죽음은 자원 고갈입니다. 적에게 맞아 죽기보다 연료가 없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는 쪽이 많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아깝다 싶을 만큼 아끼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두 번째는 길을 잘못 드는 것입니다. 미로 구조라 막다른 길이 있고,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자원이 두 배로 듭니다. 지형을 외우는 것이 사실상 공략입니다. 몇 번 죽으면서 어느 길이 통하는지 파악하고, 그다음부터 최단 경로로 움직이는 식입니다.
세 번째는 제트팩을 켜고 방향을 잘못 잡는 것입니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는 게 지상보다 둔하기 때문에, 뛰기 전에 어디로 갈지 정해 두어야 합니다. 공중에서 헤매면 그 시간 동안 계속 연료가 빠집니다.
시네마트로닉스라는 회사
이 게임을 만든 시네마트로닉스는 오락실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회사입니다. 벡터 그래픽, 그러니까 점을 찍어 그리는 게 아니라 선을 그어 그리는 화면 방식으로 유명했습니다. 스페이스 워즈와 아마겟돈, 그리고 드래곤즈 레어를 낸 곳입니다.
특히 드래곤즈 레어는 레이저디스크에 담긴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며 진행하는 게임으로, 1983년 오락실을 뒤흔들었습니다. 화면이 만화영화 그 자체였으니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프리즈는 그런 화려한 실험작들과 달리 평범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제작은 두 명의 프로그래머와 한 명의 그래픽 담당자가 맡았습니다. 소규모 인원으로 만들어진, 그 시절 오락실 게임의 전형적인 개발 규모입니다.
1984년이라는 시기
1984년은 오락실 업계에 힘든 해였습니다. 1983년 북미 게임 시장이 크게 무너지면서 여파가 오락실까지 미쳤고, 많은 회사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네마트로닉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기에 나온 게임들은 그래서 유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프리즈도 널리 깔린 게임은 아니어서 지금은 상당히 희귀한 축에 속합니다. 홍보용 전단은 남아 있어서 실제로 시장에 내놓으려 했다는 건 확인되지만, 얼마나 많은 기계가 만들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이 게임을 봤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80년대 중반 국내 오락실은 일본산 게임이 주류였고, 북미 게임은 그 인기작 위주로만 들어왔습니다. 프리즈처럼 본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게임이 태평양을 건너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지금 해 보면 규칙은 명확하고 긴장감도 있습니다. 자원을 쓰면 줄어든다는 단순한 규칙 하나로 게임 전체를 굴린다는 점이, 오히려 요즘 게임보다 깔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