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 13 늑대의 소굴
골고 13 늑대의 소굴 (Golgo 13 Okami no Su) · 1984 · Pony Can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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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정의의 편이 아닙니다. 골고 13은 의뢰를 받으면 표적을 제거하는 청부 저격수이고,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맡는 일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목표는 적 조직의 본거지에 숨어 들어가 우두머리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착한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던 그 시절의 게임들 틈에서, 살인 청부업자를 조작하게 하는 이 작품은 소재부터 확실히 다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골고 13 늑대의 소굴(Golgo 13 Okami no Su)은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MSX용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화면에 상황을 그림으로 보여 주고, 플레이어는 자판으로 명령을 넣어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반사신경이 아니라 관찰과 추리로 앞으로 나아가는 종류의 게임입니다.
자판으로 말을 걸어 푸는 게임
이 시절의 어드벤처 게임은 화면에 선택지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보고 무엇을 할지 스스로 생각해 자판으로 두들겨 넣어야 했습니다. 방을 살펴보고, 물건을 집고, 문을 열고,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게임이 알아듣는 표현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관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진행이 막히는 지점도 대개 비슷합니다. 해야 할 행동은 알겠는데 게임이 그 문장을 받아 주지 않는 경우입니다. 요령은 문장을 길게 쓰지 않는 것입니다. 동사 하나와 대상 하나로 짧게 끊어 넣고, 같은 뜻의 다른 낱말로 몇 번 바꿔 보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또 하나는 화면을 대충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배경에 그려진 작은 물건 하나가 다음 진행의 열쇠인 경우가 많습니다. 새 장소에 들어서면 먼저 전체를 훑고, 눈에 걸리는 것을 하나씩 조사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종이에 지도와 얻은 물건을 적어 두는 것도 이 시절 게임에서는 사실상 필수였습니다.
만화를 게임으로 옮긴다는 일
원작은 표적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보다, 그 한 발을 쏘기까지의 준비와 계산을 길게 보여 주는 만화입니다. 잠입, 정보 수집, 위치 확보가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어드벤처라는 형식은 그 구조와 잘 맞았습니다. 사격 장면 하나를 위해 그 앞의 모든 준비를 플레이어가 직접 밟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재는 실제 역사에서 끌어왔습니다. 옛 독일 지휘부의 은신처를 가리키던 이름을 그대로 무대에 붙여, 잠입해 들어가야 할 요새 같은 인상을 만들었습니다. 밝고 만화적인 소재가 주류였던 이 시기 가정용 게임들 사이에서 이런 정치적이고 어두운 배경은 흔치 않았습니다.
폰 캐년과 그 시절 컴퓨터 게임
이 작품을 낸 곳은 음반과 영상으로 이름이 알려진 회사였습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게임 전문 회사가 아닌 출판사, 음반사, 전자 회사가 소프트 시장에 뛰어드는 일이 흔했습니다. 컴퓨터가 팔리기 시작하니 콘텐츠가 필요했고, 이미 판권을 쥐고 있던 만화와 영화가 자연스럽게 게임이 됐습니다.
같은 작품이 다른 일본산 개인용 컴퓨터로도 나왔습니다. 기기마다 화면 성능과 저장 매체가 달라 그림의 밀도와 진행 속도가 조금씩 달랐지만, 명령을 입력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뼈대는 같았습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국내에서 MSX는 오락실과는 다른 경로로 퍼졌습니다. 학습용 컴퓨터라는 명분을 달고 집으로 들어왔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게임을 했습니다. 다만 이런 어드벤처 게임은 넘기 힘든 벽이 둘 있었습니다. 화면의 글이 전부 일본어였고, 진행하려면 그 말을 알아듣고 다시 자판으로 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계열의 게임은 국내에서 널리 즐겨지지 못했습니다. 액션이나 슈팅은 말을 몰라도 손으로 배울 수 있었지만, 문장을 넣어야 한 걸음 나아가는 게임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골고 13이라는 이름을 알던 사람들조차 대개는 첫 화면 언저리에서 멈췄고, 이 작품은 그 시절 MSX를 만졌던 사람들의 기억 한구석에 제목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