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버린스
래버린스 (Labyrinth) · 1987 · Pack-In-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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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개봉한 짐 헨슨 감독의 판타지 영화 라비린스는 인형과 특수분장으로 만든 기괴한 생물들이 가득한 미궁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영화를 게임으로 옮기는 일을 처음 맡은 곳이 루카스필름 게임즈였고, 그 결과물이 여러 기종으로 퍼져 나가면서 MSX2 판까지 나왔습니다. 영화의 축축하고 음침한 미궁 분위기를 8비트 화면 안에 어떻게 우겨넣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한 번쯤 눈길이 가는 게임입니다.
래버린스(Labyrinth)는 미궁 안을 돌아다니며 길을 찾고 사건을 풀어 나가는 어드벤처입니다. 일본판 부제는 마왕의 미궁이라는 뜻으로, 미궁 깊은 곳에 있는 존재에게 다가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작 컴퓨터판이 문장을 직접 입력하는 방식을 섞어 놓았던 반면, MSX2 판에서는 그 부분이 정리되어 화면 조작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총을 쏘며 진행하는 게임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를 고르고 무엇을 쓸지를 정하는 게임입니다.
어드벤처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 형태의 게임은 반사신경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대신 화면에 나온 것을 살펴보고, 지나온 길을 기억하고, 손에 든 물건이 어디에 쓰이는지 짐작하는 일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때는 일단 갈 수 있는 방향을 하나씩 전부 밟아 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미궁물의 기본 요령은 지도를 직접 그리는 것입니다. 화면이 한 칸씩 넘어가는 구조에서 비슷하게 생긴 통로가 반복되면 방향 감각이 금방 무너집니다. 종이에 격자를 그려 두고 이동할 때마다 칸을 채워 나가면, 아직 안 가 본 곳이 어디인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당시 이런 게임을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옆에 공책을 펴 두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막힌 곳을 기록해 두는 습관입니다. 지금 못 여는 문이나 못 지나가는 지점을 만나면 그 자리를 적어 두었다가, 새 물건을 얻은 뒤 돌아옵니다. 어드벤처가 답답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기록을 안 해서 같은 곳을 몇 바퀴씩 도는 것입니다.
영화와 게임 사이
영화의 미궁은 벽이 움직이고 길이 바뀌며, 말을 거는 생물들이 거짓말을 섞어 힌트를 줍니다. 게임에서도 이 분위기를 살리려는 시도가 곳곳에 보입니다. 만나는 존재에게 무엇을 물을지, 그 대답을 믿을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이 진행의 일부가 됩니다.
다만 8비트 기기의 한계 안에서 영화의 규모를 그대로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화면 수와 등장 요소는 영화보다 훨씬 단출하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배경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장면과 생물을 화면에서 알아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MSX2 라는 기기와 그 시절 사정
MSX2는 앞선 MSX보다 화면 색과 해상도가 크게 좋아진 기기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 일본에서는 어드벤처처럼 정지 화면의 그림 품질이 중요한 장르가 MSX2로 많이 나왔습니다. 이 게임도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액션이 화려한 게임보다는, 한 장면 한 장면의 그림을 보여 주는 데 힘을 준 쪽입니다.
일본에서는 카트리지 형태로 나왔고, 화면 안내가 전부 일본어였습니다. 이 점이 한국에서 이 게임이 널리 퍼지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어드벤처는 글을 읽어야 진행되는 장르인데, 그 글을 읽을 수 없으면 화면만 구경하다 끝납니다.
한국에서의 자리
1980년대 후반 한국의 MSX 사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끈 것은 대체로 손으로 바로 즐길 수 있는 액션과 슈팅이었습니다. 일본어 어드벤처는 아는 사람만 아는 영역이었고, 학교나 문방구를 통해 도는 복사 테이프나 카트리지 목록에도 잘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당시에 끝까지 해 본 한국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다시 열어 보면 영화 판권물이 8비트 시절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미궁이라는 소재를 그 시절 기술로 어떻게 다뤘는지를 확인하는 쪽에 재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