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일각
메종일각 (Maison Ikkoku) · 1987 · Micro Ca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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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한 채가 무대인 게임
주인공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숙집 복도를 오가고, 방문을 두드리고, 사람들과 말을 섞는 것이 전부입니다. 총도 없고 점프도 없고 잔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게임은 끝까지 가는 데 만만치 않은 시간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가 화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일본 컴퓨터 게임에는 이런 부류가 한 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화면 위쪽에 그림이 있고 아래쪽에 명령어 목록이 있으며, 플레이어는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상황을 조금씩 밀고 나갑니다. 그림은 거의 정지해 있고, 진행은 오로지 플레이어가 고른 명령의 순서로 결정됩니다. 이 게임도 그 계보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메종일각(Maison Ikkoku)은 같은 이름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커맨드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낡은 목조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과, 그 안에서 조금씩 진전되는 관계를 따라가는 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싸움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이야기가 멈추면 그것이 곧 막힌 것입니다.
조작은 단순합니다. 화면 아래에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종류의 명령이 늘어서 있고, 그중 하나를 고르면 짧은 문장이 돌아옵니다. 어떤 명령은 아무 반응도 주지 않고, 어떤 명령은 이야기를 한 칸 앞으로 밉니다. 장소마다 고를 수 있는 명령이 달라지므로, 새 방에 들어가면 일단 목록 전체를 한 번씩 눌러 보는 것이 기본입니다.
막히는 지점과 넘기는 방법
이 시절 어드벤처 게임이 어려운 이유는 퍼즐이 정교해서가 아니라, 정답이 되는 명령 하나를 찾을 때까지 다른 모든 조합을 손으로 훑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 안의 특정 사물을 한 번 더 봐야 다음이 열리거나, 같은 사람에게 두 번 세 번 말을 걸어야 새 화제가 나오는 식입니다. 한 번 봤다고 넘어가면 그대로 벽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요령이랄 것은 지루할 만큼 성실해지는 것입니다. 방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것을 전부 보고,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부 말을 걸고, 대화가 반복될 때까지 눌러 봅니다. 그러고도 진전이 없다면 아까 지나친 장소로 되돌아가 같은 일을 다시 합니다. 상태가 바뀌면 예전에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새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흔합니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일본어를 읽지 못하면 사실상 진행이 불가능한 부류입니다. 화면에 나오는 문장이 곧 단서이고, 그 단서를 못 읽으면 명령을 고르는 일이 순수한 찍기가 됩니다. 국내에서 이런 게임이 널리 퍼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만든 곳과 그 시절
만든 곳은 마이크로캐빈입니다. 나중에 판타지 롤플레잉으로 이름을 알린 회사지만, 이 시기에는 일본 8비트 컴퓨터 시장을 상대로 어드벤처를 여러 편 내던 개발사였습니다. 인기 만화의 판권을 사서 어드벤처로 만드는 것은 당시 흔한 기획이었습니다. 원작을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그림 몇 장과 대사 몇 줄만으로도 충분히 그 세계가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MSX2는 이런 게임에 잘 맞는 기계였습니다. 스크롤이나 스프라이트를 혹사할 일이 없는 대신 정지 화면 한 장의 색을 넉넉히 쓸 수 있었고, 그림 한 장을 오래 보여 주는 구성이라 하드웨어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액션 게임에서 MSX가 다른 기종에 밀리던 것과 달리, 어드벤처에서는 격차가 훨씬 작았습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한국에서 MSX는 아이들 방에 들어온 첫 컴퓨터였고, 돌아다니던 소프트웨어는 대개 복사 테이프와 복사 디스크였습니다. 그중에서 실제로 손이 가는 것은 조이스틱만 있으면 무슨 게임인지 알 수 있는 액션과 슈팅이었습니다. 글을 읽어야 굴러가는 어드벤처는 화면만 보고는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대부분 몇 분 만에 꺼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게임은 국내에서 유명해질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원작 만화가 한국에 정식으로 알려진 시점도 게임보다 한참 뒤였으니, 원작을 아는 사람이 게임을 만나는 조합이 성립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이 게임을 켜 보는 재미는 그래서 조금 다른 쪽에 있습니다. 화려한 것 하나 없이 그림과 문장만으로 한 시대의 게임이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직접 눌러 보는 재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