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슬 봄버
새터데이 나이트 슬램 마스터즈 (Saturday Night Slam Masters Europe) · 1994 · Ca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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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든 손이 레슬링을 만들면
캡콤이 대전 격투로 오락실을 장악하던 시기에 내놓은 프로레슬링 게임입니다. 캐릭터 디자인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원화가가 맡았다는 사실이 화면을 켜자마자 드러납니다. 근육의 선, 과장된 체형, 얼굴의 인상까지 그 시절 캡콤 격투 게임의 인장이 그대로 찍혀 있습니다.
실제로 이 게임의 등장인물 중 마이크 해거는 파이널 파이트에 나왔던 그 시장님입니다. 시장이 되기 전 프로레슬러였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그 이력을 살려 링 위에 올려놓은 셈입니다. 캡콤 게임들을 이어 온 팬이라면 이 등장만으로도 반갑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머슬 봄버(Saturday Night Slam Masters)는 링 안에서 상대를 눕히고 카운트 셋을 세는 것이 목표인 프로레슬링 대전 게임입니다. 열 명 남짓한 레슬러 중 하나를 골라 차례로 다른 선수들과 맞붙는 방식입니다.
조작은 격투 게임의 문법을 따르되 레슬링에 맞게 바뀌어 있습니다. 때리기와 잡기가 나뉘어 있고, 상대에게 붙어 잡기를 성공시키면 던지기 기술이 나갑니다. 던지는 방향과 종류는 레버를 어느 쪽으로 넣느냐로 갈립니다. 상대가 쓰러져 있을 때 위에 올라타면 핀 폴이 시작되고, 여기서 상대가 버튼을 빠르게 눌러 빠져나오려 하면 서로 연타 싸움이 됩니다.
링 밖으로 나가는 것도 게임의 일부입니다. 로프에 밀어붙였다가 튕겨 나오게 하거나, 아예 링 밖으로 던져 버릴 수 있고, 밖에서는 심판이 카운트를 셉니다. 카운트가 다 차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대로 지므로, 밖에서 시간을 끄는 전략도 되고 반대로 자기 무덤이 되기도 합니다.
체력은 화면 위의 막대로 표시되지만 이 막대가 0이 된다고 바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대를 눕힌 뒤 확실히 눌러 카운트 셋을 채워야 승리이고, 그사이 상대가 힘을 회복해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다 이겼다고 생각한 판이 뒤집히는 순간이 이 게임에서 가장 짜릿합니다.
캐릭터마다 다른 싸움
선수들의 체격 차이가 상당히 큽니다. 몸집이 작고 빠른 선수는 던지기 위력이 약한 대신 공중 기술이 좋고, 거대한 선수는 느리지만 한 번 잡으면 판을 끝낼 만큼 아픕니다. 이 차이가 눈에 확 보이게 만들어져 있어서 캐릭터를 고르는 순간 어떻게 싸울지가 정해집니다.
각 선수에게는 필살기가 하나씩 있습니다. 격투 게임처럼 레버를 돌려 넣는 커맨드로 나가는데, 링 위에서 이걸 성공시키면 화면이 크게 흔들리며 관중이 반응합니다. 커맨드가 그리 까다롭지 않아 처음 잡아도 몇 번 시도하면 나갑니다.
대전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 관리가 핵심입니다. 붙으면 잡기 싸움이고, 떨어지면 타격 싸움인데, 잡기가 훨씬 강력하므로 대부분의 판은 누가 먼저 붙느냐로 갈립니다. 상대가 다가올 때 미리 때려서 접근을 끊는 감각이 익숙해지면 승률이 확 오릅니다.
여럿이 함께 하는 재미
이 게임의 진짜 매력은 다인 대전입니다. 네 명이 동시에 링에 올라 서로 뒤엉키는 모드가 있는데, 여기서는 판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됩니다. 둘이 싸우는 사이 뒤에서 세 번째가 덮치고, 잡혀 있는 사이 네 번째가 로프에서 날아옵니다.
둘이 짝을 이뤄 다른 둘과 겨루는 태그 방식도 있습니다. 링 밖에 서 있는 동료와 손을 마주쳐 교대하고, 심판이 다른 쪽을 보는 사이 둘이 함께 때리는 반칙까지 가능합니다. 프로레슬링 중계에서 보던 장면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셈입니다.
국내에서의 자리
오락실에서는 이 게임이 격투 게임 옆자리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나 킹 오브 파이터즈만큼 줄이 길지는 않았지만, 여럿이 붙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친구들끼리 오면 한 판씩 꼭 하고 가는 기계였습니다.
슈퍼패미컴 이식판은 화면이 조금 작아지고 캐릭터 수가 줄었지만, 던지기의 손맛과 캐릭터 그림의 인상은 잘 살렸습니다. 집에서 컨트롤러 두 개로 붙어 보면 왜 이 게임이 캡콤의 실험작 중에서 유독 오래 회자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격투 게임의 정교함과 레슬링의 난장판을 한 화면에 잘 섞어 놓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