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키리의 전설
발키리의 전설 (Valkyrie no Densetsu Japan) · 1989 · Na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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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 게임인데 상점에서 물건을 삽니다. 돈을 모으고, 마법을 사고, 무기를 바꾸고, 마을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1989년 아케이드에 이런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봐도 신기합니다. 동전을 넣으면 몇 분 안에 끝나야 하는 오락실에서, 남코는 롤플레잉의 문법을 통째로 가져와 액션 게임 위에 얹었습니다.
발키리의 전설(Valkyrie no Densetsu)은 여전사 발키리와 그 동행자가 되어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점의 세계를 돌아다니는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적을 쓰러뜨려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마법과 장비를 사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기본 흐름입니다.
오락실에 들어온 모험
이 게임의 진행은 일반적인 아케이드 액션과 다릅니다. 스테이지가 일렬로 이어지는 대신 넓은 지역이 펼쳐지고, 그 안에 마을과 상점과 던전이 흩어져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살지, 지금 이 지역을 더 돌면서 돈을 모을지를 플레이어가 정합니다.
그래서 같은 게임을 두 사람이 해도 진행이 달라집니다. 마법에 돈을 몰아준 사람과 장비를 먼저 챙긴 사람의 화면이 다릅니다. 오락실에서 옆 사람 화면을 보는 재미가 유난히 컸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 자유도가 초심자를 막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으니 헤매게 되고, 헤매는 동안 동전이 사라집니다. 요령이라면 초반에는 돈을 아끼지 말고 회복 수단부터 확보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잃는 손해가 마법 하나 덜 사는 손해보다 훨씬 큽니다.
마법을 고르는 재미
이 게임에서 가장 오래 붙잡히는 요소가 마법입니다.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마법이 여러 가지이고 쓰임이 확실히 다릅니다. 화면 전체를 정리하는 것, 한 방향으로 강하게 나가는 것,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각각 있어서 어떤 상황을 자주 만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집니다.
마법에는 사용 자원이 붙어 있어서 무한정 쓸 수 없습니다. 강한 마법일수록 소모가 크니 아껴야 하는데, 아끼다가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균형을 잡는 감각이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가릅니다.
가장 흔한 실수는 강한 마법을 보스용으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보스보다 잡몹이 몰려나오는 구간에서 죽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위험하다 싶을 때 아끼지 말고 쓰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멀리 갑니다.
시스템 2 위의 아기자기함
같은 남코 시스템 2 기판에서 나온 다른 게임들이 대체로 거칠고 기계적인 화면을 보여준 것과 달리, 이 게임은 둥글둥글하고 색이 부드럽습니다. 캐릭터가 작지만 동작이 많고, 배경 소품 하나하나가 꼼꼼합니다.
같은 기판의 성능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쓴 사례라 할 만합니다. 확대 축소와 다중 스크롤 같은 기능을 화려한 폭발이 아니라 세계를 넓어 보이게 만드는 데 쓴 결과, 화면이 실제 해상도보다 훨씬 넓은 곳처럼 느껴집니다.
일본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게임
이 작품은 일본 내수로만 출시됐습니다. 텍스트가 많고 상점과 대화가 게임의 뼈대여서 번역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데, 아케이드에서 그 번역 비용을 감당할 이유가 당시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오락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습니다.
들어온 곳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채로 상점에 들어가 아무거나 사고 나오는 식으로 하다 보니, 이 게임의 절반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그 시절 이 게임을 붙잡고 무슨 마법이 무슨 효과인지 직접 사서 확인해 가며 지도를 외운 분들도 있었고, 그런 분들에게는 오락실에서 만난 가장 이상하고 넓은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나중에 PC엔진으로 이식되면서 더 넓은 층에 알려졌고, 남코 안에서도 발키리라는 캐릭터가 이후 여러 작품에 얼굴을 내밀 만큼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케이드 원작을 지금 해 보면 그 시작점이 이미 얼마나 완성돼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