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노이드 리턴즈
아르카노이드 리턴즈 (Arkanoid Returns Ver 2 02o 1997 02 10) · 1997 · T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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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돌아온 벽돌깨기
벽돌깨기라는 장르는 1986년 아르카노이드 한 편으로 사실상 완성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타이토는 그 완성형을 11년이나 묵혀 두었다가 1997년에 다시 꺼내 놓았습니다. 오락실이 대전 격투와 폴리곤 3D로 뒤덮여 있던 시기였고, 바로 옆 기계에서는 사람이 몰려 동전을 쌓아 두고 순서를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그 한복판에 놓인 이 게임은 시대에 뒤처진 물건처럼 보이기 쉬웠지만, 실제로 붙어 보면 정반대입니다. 배경이 그라데이션으로 흐르고 벽돌이 깨질 때마다 잔해가 화려하게 튀며, 배경 음악은 타이토 사내 밴드가 손본 두툼한 소리로 깔립니다. 도트로 그릴 수 있는 벽돌깨기의 끝을 한 번 보여 주고 가겠다는 태도가 화면 전체에 배어 있습니다.
어떤 게임인가
아르카노이드 리턴즈(Arkanoid Returns)는 화면 아래쪽의 받침대 바우스를 좌우로 움직여 공을 튕겨 올리고, 위에 쌓인 벽돌을 전부 부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게임입니다. 공을 아래로 흘리면 잔기를 하나 잃고, 잔기가 떨어지면 끝납니다. 규칙은 이 한 줄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전부 손끝의 정확도에 달려 있습니다.
조작은 다이얼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레버로 하는 게임과 달리 손목을 아주 조금만 틀어도 받침대가 그만큼 움직이고, 크게 돌리면 화면 반대편까지 단숨에 건너갑니다. 이 미세한 감각 때문에 벽돌깨기는 다른 조작계로는 대체가 잘 안 됩니다.
받침대는 평평한 판이 아니라 가운데가 볼록한 모양이라, 공이 어디에 맞느냐로 반사각이 달라집니다. 가운데로 받으면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고, 끝으로 받을수록 옆으로 크게 꺾입니다. 이걸 의식하기 시작하면 공을 받는 게 아니라 공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 게임이 됩니다.
캡슐을 먹느냐 피하느냐
벽돌을 깨면 알파벳이 적힌 캡슐이 아래로 천천히 떨어집니다. 받침대를 넓히는 것, 공을 붙잡았다가 원하는 각도로 쏘는 것, 받침대에서 레이저를 쏘는 것, 공이 세 개로 갈라지는 것, 다음 판으로 건너뛰는 문을 여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좋은 것만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받침대를 좁히거나 공을 빠르게 만드는 캡슐도 섞여 있고, 캡슐을 받으려고 자리를 옮기다가 정작 공을 놓치는 일이 훨씬 잦습니다. 그래서 능숙한 사람일수록 캡슐을 골라 먹습니다. 공의 궤적과 캡슐의 낙하선이 겹칠 때만 손을 대고, 애매하면 그냥 흘려보냅니다.
특히 공이 세 개로 갈라지는 캡슐은 양날입니다. 벽돌은 빨리 줄어들지만 화면이 순식간에 정신없어지고, 공을 하나씩 잃다 보면 결국 남은 하나마저 놓치기 쉽습니다. 잔기가 아슬아슬할 때는 오히려 공 하나로 차분히 끄는 편이 안전합니다.
어디서 막히는가
처음 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당하는 것은 은색 벽돌입니다. 한 번 쳐서는 깨지지 않고 여러 번 맞혀야 사라지는데, 판이 진행될수록 필요한 타격 수가 늘어납니다. 여기에 아예 부술 수 없는 금색 벽돌이 섞여 들어오면 공이 좁은 통로에 갇혀 엉뚱한 곳에서만 튕기게 됩니다.
두 번째는 속도입니다. 이 게임의 공은 같은 판 안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빨라집니다. 초반의 느긋한 속도에 손이 익어 있으면 후반에 반응이 한 박자씩 늦어집니다. 벽돌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오히려 놓치는 이유가 이것이라, 마지막 몇 개는 서두르지 말고 받침대를 화면 가운데에 두고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요령을 하나만 꼽자면 공을 벽돌 더미 위쪽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윗줄을 뚫어 공이 천장과 벽돌 사이에 들어가면 혼자서 좌우로 튕기며 여러 줄을 한꺼번에 지웁니다. 그 몇 초 동안은 손을 놓고 구경만 해도 됩니다.
시리즈 안에서의 자리
첫 아르카노이드는 벽돌 배치와 캡슐 체계를 세웠고, 이듬해의 속편은 판마다 다른 구성으로 폭을 넓혔습니다. 이 작품은 거기에 새로운 캡슐과 판 구성을 더하면서, 무엇보다 화면과 소리를 시대에 맞게 통째로 올렸습니다. 규칙은 건드리지 않고 만듦새만 끌어올린, 정통 후속작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옛날 아르카노이드를 기억하는 사람이 앉으면 설명 없이 바로 손이 갑니다. 반대로 벽돌깨기를 처음 보는 사람도 한 판이면 규칙을 다 이해합니다. 오래된 장르가 살아남는 방식이 대체로 이렇습니다.
한국 오락실에서
한국에서 아르카노이드는 오락실보다도 문방구 앞 기계와 컴퓨터 쪽으로 더 넓게 퍼진 이름이었습니다. 다이얼이 달린 전용 기계는 흔하지 않았고, 대신 벽돌깨기라는 이름으로 여러 아류작이 돌아다녔습니다.
1997년판은 그런 사정 때문에 국내에서 널리 깔리지는 못했습니다. 대전 격투 기계 사이에 한 대쯤 끼어 있으면 오히려 눈에 띄었고, 격투 게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앉아 동전 하나를 넣는 자리에 놓이곤 했습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사람도 화려해진 화면과 익숙한 반사음은 대체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