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류 미로
이리테이팅 메이즈 (The Irritating Maze Ultra Denryu Iraira Bou) · 1997 · S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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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실패했다고 바람을 뿜어 대는 오락실 기계가 있었습니다. 화면 주위에 전구가 요란하게 깜빡이고, 벽에 닿는 순간 앞쪽 구멍에서 세찬 바람이 확 나옵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더 놀라는 장면이 흔했습니다. 네오지오 기판으로 나온 게임 중 트랙볼을 쓰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류 미로(The Irritating Maze / Ultra Denryu Iraira Bou)는 사우루스가 만들고 SNK가 1997년에 내놓은 미로 게임입니다.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던 전류 철봉 놀이를 그대로 게임으로 옮겼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막대를 움직이되, 벽에 닿으면 실패입니다. 게다가 제한 시간까지 있습니다.
무엇을 하는 게임인가
조작은 트랙볼 하나입니다. 공을 굴리는 대로 화면 속 막대가 움직이고, 그 막대로 좁은 길을 따라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갑니다. 규칙은 이것뿐인데, 실제로 해 보면 이만큼 손에 땀이 차는 게임도 드뭅니다.
미로가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전하는 풍차 모양 장애물이 돌아가고, 벽 자체가 움직여 길을 좁혔다 넓혔다 하며, 광차 같은 것이 길을 가로질러 지나갑니다. 길이 열리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그 틈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제한 시간이 뒤에서 밀어 대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트랙볼을 다루는 요령
처음 하는 분이 반드시 겪는 문제는 트랙볼을 너무 세게 굴린다는 것입니다. 트랙볼은 관성이 있어서 한 번 크게 굴리면 손을 떼도 계속 굴러갑니다. 그 여세로 막대가 벽에 박혀 버리는 게 초반 실패의 대부분입니다.
요령은 손바닥 전체로 굴리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조금씩 밀어 주는 것입니다. 짧게 밀고 멈추고, 다시 짧게 미는 식으로 움직이면 막대가 통제 범위 안에서 움직입니다. 급하게 가야 할 구간에서만 크게 굴리고, 좁은 구간에서는 철저히 조금씩 미는 식으로 리듬을 나누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는 시선입니다. 막대 끝만 보고 있으면 앞에서 다가오는 움직이는 벽을 놓칩니다. 막대보다 조금 앞쪽, 다음에 지나갈 구간을 보면서 움직이면 대응할 시간이 생깁니다. 이건 운전할 때 바로 앞이 아니라 멀리 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디서 어려워지는가
앞쪽 코스는 길이 넉넉하고 장애물도 단순해서 무난히 통과됩니다. 뒤로 갈수록 길이 좁아지고, 움직이는 장애물이 여러 개 겹치기 시작합니다. 두 개의 장애물이 서로 다른 주기로 움직이는 구간이 특히 고약합니다. 하나가 열릴 때 다른 하나가 닫히는 식이라, 둘 다 열리는 짧은 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구간에서는 서두르는 쪽이 반드시 집니다. 시간이 줄어드는 게 보여도 일단 안전한 지점에 막대를 세워 두고 장애물의 주기를 한 바퀴 지켜본 다음, 지나갈 순서를 정하고 움직이는 편이 결과적으로 빠릅니다. 마지막 코스까지 통과하면 지나온 경로를 카드로 뽑아 주는 장치가 달린 기체도 있었습니다.
네오지오와 전용 기체
이 게임이 특이한 건 하드웨어 쪽입니다. 네오지오 MVS는 원래 레버와 버튼으로 하는 기판이라 트랙볼을 쓰는 게임이 없었는데, 이 작품만 예외입니다. 게다가 일반 오락실 기계에 넣는 게 아니라 전용 기체로 나왔습니다. 화면을 둘러싼 전구가 깜빡이고, 실패하면 공기를 세게 뿜어내는 장치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설계는 게임을 하는 사람보다 옆에서 보는 사람을 겨냥한 것입니다. 조용히 집중하다가 갑자기 바람과 함께 실패하는 광경이 벌어지니, 주변 사람들이 웃고 몰려드는 구조입니다. 1990년대 후반 오락실이 체감형 기기와 대형 기체 쪽으로 손님을 끌던 흐름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지금 해 보면
전용 기체의 바람과 전구가 없어도 이 게임의 핵심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벽에 닿으면 안 된다는 단순한 규칙, 움직이는 장애물, 뒤에서 조여 오는 시간. 이 세 가지만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만듭니다.
조작이 하나뿐이라 처음 보는 사람도 30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러면서도 잘하려면 손의 힘 조절과 타이밍 판단이 모두 필요합니다. 규칙이 단순할수록 오래 붙잡게 된다는 오락실 게임의 오래된 진리를 잘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