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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보이

플라이 보이 (Fly Boy) · 1982 · Kane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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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글라이더로 하는 게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는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실제로 잡아 보면 전혀 다릅니다. 화면 속 글라이더는 가만두면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엔진이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실제 내용은 '날아가기'가 아니라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면서 버티기'에 가깝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승 기류를 찾아 고도를 벌고, 다시 조금씩 잃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 감각이 1982년 게임치고 놀랄 만큼 구체적입니다.

플라이 보이(Fly Boy)는 가네코가 1982년에 내놓은 아케이드 게임입니다. 화면을 옆에서 바라보는 시점이고, 행글라이더를 탄 주인공이 지형 위를 가로지르며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와 헬리콥터 같은 장애물을 피해 목표 착륙장에 정확히 내려앉는 것이 한 판의 목표입니다. 조작은 레버와 버튼 하나로 단순합니다. 레버로 기수를 조절하고 버튼으로 급강하합니다. 이 게임은 이후 아타리에 라이선스되어 '패스트 프레디'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유통되었습니다.

플라이 보이 스포츠 게임 화면 1 - 오락실 (1982)

보이지 않는 공기를 읽는 게임

이 게임의 핵심은 화면에 그려지지 않은 것을 다루는 데 있습니다. 바람의 방향, 위로 밀어 올리는 상승 기류, 아래로 끌어내리는 하강 기류가 구간마다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글라이더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지금 어떤 공기 위에 있는지를 역으로 읽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하는 분은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무너집니다. 조작을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해 가만히 두는 것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곧 추락입니다. 반대로 계속 조작을 넣어 억지로 고도를 붙잡으려는 것도 실패합니다. 속도를 잃으면 오히려 더 빨리 가라앉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지면 요령이 생깁니다. 고도가 넉넉할 때는 조금씩 내려가며 속도를 벌어두고, 상승 기류를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최대한 고도를 회복한 뒤 다시 활강으로 거리를 버는 식입니다. 실제 행글라이딩의 기본 원리를 그대로 옮긴 셈인데, 1982년 하드웨어에서 이 감각을 구현했다는 점이 이 게임을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플라이 보이 스포츠 게임 화면 2 - 오락실 (1982)

알프스에서 이집트까지

한 판씩 넘어갈 때마다 배경이 바뀝니다. 알프스 산맥 위를 지나며 아래로 기차와 다리와 나무가 흘러가고, 태평양 구간에서는 요트와 열대 섬과 항공모함이 지나갑니다. 이집트 구간에서는 낙타와 피라미드가 등장합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같은데 배경이 바뀌면서 다음 구간이 궁금해지도록 만든, 이 시절 게임들이 즐겨 쓰던 방식입니다.

배경은 장식만은 아닙니다. 지형의 높낮이가 곧 활강 여유가 되기 때문에, 산이 솟은 구간에서는 미리 고도를 벌어두지 않으면 넘지 못합니다. 반대로 바다 위 구간은 지형은 평탄하지만 기류가 덜 도와주는 느낌이라 거리를 버티는 것이 관건이 됩니다.

하늘에 떠 있는 장애물도 계속 늘어납니다. 초반에는 드문드문 지나가던 비행체가 뒤로 갈수록 촘촘해지고, 피하려고 고도를 바꾸다 보면 애써 벌어둔 높이를 그대로 잃게 됩니다. 회피와 고도 관리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지점이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착륙이라는 마지막 관문

한 구간의 끝에는 착륙장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살아서 도착하는 것과 제대로 내려앉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너무 높은 상태로 도착하면 착륙장을 지나쳐 버리고, 너무 낮으면 도달하기 전에 떨어집니다. 속도가 남아 있는 상태로 내려앉는 것도 실패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숙련된 플레이는 착륙장이 보이기 한참 전부터 준비가 시작됩니다. 남은 거리와 현재 고도를 견주어 어느 시점부터 고도를 버릴지 정하고, 마지막에는 급강하 버튼으로 미세하게 위치를 맞춥니다. 정확히 내려앉으면 보너스 점수가 붙으므로 점수를 노리는 분들은 이 마무리에 공을 들이게 됩니다.

1982년이라는 시점

이 시기 아케이드는 화면 하나에 모든 것이 담긴 고정 화면 게임이 여전히 주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옆으로 흐르는 화면에 물리적인 감각을 얹으려 한 시도는 흔치 않았습니다. 총을 쏘거나 적을 밟는 대신, 공기의 흐름을 상대로 버티는 것을 게임의 중심에 놓은 발상 자체가 독특합니다.

가네코는 이 뒤로도 오랫동안 아케이드 기판을 만든 회사입니다. 후반기에는 슈팅과 액션 쪽에서 이름을 남기지만, 회사의 출발점 가까이에 있는 이 게임은 훨씬 조용하고 실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내 오락실 기준으로 보면 이 게임은 크게 유행한 축은 아닙니다. 화려한 폭발도, 대전 요소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번 감을 잡으면 조용히 오래 붙잡게 되는 종류의 게임이고, 지금 다시 해 보면 초창기 아케이드가 어떤 방향까지 상상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