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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마스터

갱 마스터 (Gang Master) · 1983 · ASC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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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마스터라는 제목만 보면 조직 폭력배가 나오는 액션 게임 같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이 게임에서 하는 일은 앉아서 머리를 굴리는 것뿐입니다. 은행을 털러 들어간 갱단이라는 설정을 씌워 놨을 뿐, 알맹이는 숨겨진 조합을 알아맞히는 추리 퍼즐입니다.

갱 마스터(Gang Master)는 마스터마인드 방식의 추리 게임입니다. 컴퓨터가 색깔 핀 몇 개를 순서대로 숨겨 놓으면, 플레이어가 조합을 하나씩 대 보면서 정답을 좁혀 갑니다. 일본에서는 이 규칙을 히트 앤 블로라고 부릅니다.

갱 마스터 액션 게임 화면 1 - MSX (1983)

힌트를 읽는 법이 전부

규칙은 간단합니다. 한 번 추측할 때마다 컴퓨터가 두 가지 숫자를 알려 줍니다. 하나는 색도 맞고 자리도 맞은 개수, 다른 하나는 색은 맞았지만 자리가 틀린 개수입니다. 앞의 것을 히트, 뒤의 것을 블로라고 부릅니다.

이 두 숫자만으로 정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 조합이나 대 보는 수밖에 없지만, 답이 하나씩 쌓이면 가능성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히트가 0이고 블로가 3이라면, 그 세 색이 정답에 들어 있되 지금 자리는 전부 틀렸다는 뜻입니다. 이런 식으로 조건을 겹쳐 나가면 어느 순간 답이 하나로 좁혀집니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갈립니다. 초보는 감으로 하나씩 바꿔 보지만, 익숙한 사람은 다음 추측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정보를 최대한 얻도록 조합을 설계합니다. 지금 대는 조합이 정답일 확률보다, 그 결과가 가능성을 얼마나 잘라 내는지를 먼저 봅니다.

갱 마스터 액션 게임 화면 2 - MSX (1983)

처음 하는 사람이 빠지는 함정

가장 흔한 실수는 한 번에 하나씩만 바꾸는 것입니다. 안전해 보이지만 정보를 아주 조금씩만 얻게 되어 시도 횟수를 낭비합니다. 초반에는 오히려 여러 개를 한꺼번에 바꿔 색이 무엇무엇 들어 있는지를 먼저 알아내는 편이 효율적입니다.

두 번째 함정은 앞의 결과를 잊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지금까지의 시도와 결과가 화면에 남지만, 그걸 종합해서 판단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세 번째 시도쯤 되면 이미 앞의 두 결과와 모순되는 조합을 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종이에 적으면서 하는 게 오히려 정석입니다.

시도 횟수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 헛된 시도를 하나라도 줄이는 게 핵심입니다.

보드게임을 컴퓨터로 옮기던 시절

마스터마인드는 원래 1970년대에 나온 보드게임입니다. 색깔 핀과 구멍이 뚫린 판으로 하는 물건이었고, 상대가 낸 문제를 맞히는 이인용 게임이었습니다. 이걸 컴퓨터로 옮기면 상대가 없어도 되고, 컴퓨터가 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해 줍니다.

초기 가정용 컴퓨터에는 이런 종류의 소프트가 많았습니다. 그림을 그릴 능력이 부족하니 텍스트와 숫자로 할 수 있는 게임이 먼저 만들어졌고, 마스터마인드는 그중에서도 프로그램으로 옮기기 좋은 소재였습니다. 실제로 초창기 컴퓨터 잡지에는 마스터마인드를 만드는 프로그램 예제가 자주 실렸습니다.

갱 마스터가 이 규칙에 갱단 이야기를 씌운 건 상품성 때문일 겁니다. 그냥 숫자 맞히기라고 하면 팔리지 않으니, 은행을 터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셈입니다. 그 시절 소프트 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방식입니다.

MSX 첫해의 소프트

이 게임은 1983년 10월에 나왔습니다. MSX라는 규격이 발표된 바로 그해입니다. 아스키가 냈고, 내셔널 브랜드로도 같은 물건이 나왔습니다. 규격을 주도한 회사가 초기 소프트 목록을 채우기 위해 만들었다는 성격이 강합니다.

용량은 16킬로바이트입니다. 이 정도 규칙이라면 그 안에 충분히 들어갑니다. 오히려 이런 게임은 작은 용량이 문제가 되지 않는 종류라, 초기 기종에 딱 맞는 소재였습니다.

한국에서 MSX가 퍼진 건 이보다 몇 년 뒤였고, 그때는 이미 액션과 슈팅 소프트가 넘쳐 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초기 추리 게임을 실제로 붙잡고 있던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규칙 자체는 지금도 유효해서, 처음 보는 사람도 몇 판이면 요령을 잡습니다. 화려한 그림 없이 규칙만으로 사람을 붙잡아 두는 게임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기에는 좋은 물건입니다.